붉은 풍금소리

제3기 경남문화기자단 민선영

유월이 저물고 있는 즈음, 함양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되는 극단 현장의 「붉은 풍금소리」 작품을 취재했다. 상림 숲과 인접해 있는 함양문화예술회관은, 자연과 예술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이라 그런지 늘 주변에는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다. 「붉은 풍금소리」, 과연 어떤 공연일까? 공연에 대한 사전 정보가 별로 없어서 무척 궁금했다. 풍금을 연주하는 것인지? 아님 연극의 제목인지? 궁금증을 안고 갔다. 풍금이란 악기가 주는 느낌은 참 정겹다. 본 기자가 초등학교를 다닐 60년대에는, 시골 학교에서는 피아노는 구경하기 어려웠고, 그 대신 자그마한 풍금이 피아노를 대신했다. 어려웠던 시절이라 풍금도 학교에 고작 한 대 정도밖에 없어서, 음악 수업이 있는 날이면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풍금을 교실로 옮겨와서 수업을 했다.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참 아름답게 남아있기에, 이날 공연에 대한 기대가 컸다.

공연안내 팸플릿

공연 시작 전 연주자의 등장 모습

「붉은 풍금소리」는 극단 현장의 「2018 공연장 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열리는 공연으로, ‘색깔 있는 작은 극장 시리즈 1, 2, 3,’ 중 첫 번째로 공연되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우상임의 아코디언 에세이, 아픈 역사치유 음악극’ 이란 부제로 공연되는 작품이다. 공연 제목은 「붉은 풍금소리」라고 되어 있었는데, 아코디언 연주로 진행되는 1인극이었다. 이 작품은 극단 현장의 대표인 고능석씨가 구성 및 연출을 했으며, 출연자는 아코디언 연주자 우상임씨다.

“아홉살 때 4.3사건을 겪었던 어린아이는 이제 여든 노인이 되었습니다. 노인이 된 어머니를 바라보는 주인공은 어머니가 겪었던 4.3사건을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아코디언이라는 악기로 그 말 못한 세월의 아픔을 노래합니다. 이야기와 연주가 어우러진 4.3을 따라가 보면서, 4.3에 얽힌 개인의 이야기와 역사를 만나는 시간... 제주 4.3사건 70주년을 바라보며, 그 아픈 질곡의 기억을 다시 우리 앞에 내려 놓습니다” 라고 시놉시스가 소개되어 있다.

출연자 우상임씨는 “쉽게 치유라는 말하기에는 그 기억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 그 아픈 기억을 말-할-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어느 한 점이 위로가 됩니다” 라고 했다(공연팸플렛 참고).

공연 장면 중

「붉은 풍금소리」는, 출연자이면서 아코디언 연주자인 우상임씨의 어머니가 겪은 자전적 에세이라고 했다. 그녀는 어머니가 겪은 4.3사건의 아픔을 내레이션과 음악으로 풀어내며, 주인공이 되었다가 관찰자가 되었다가를 반복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1939년생 황금녀입니다. 2남1녀 중 맏이로 태어났으며, 9살이 되던 해 4.3사건을 겪었습니다” 라는 말로 새로운 장이 열릴 때 마다 이 대사는 반복되었다. 맨 첫 장면은 아름다운 봄 풍경과 함께 출연자가 등장했으며, “나는 1939년생 황금녀입니다. 2남1녀 중 맏이로 태어났으며, 9살이 되던 해 4.3사건을 겪었습니다” 라는 대사를 한 뒤 ‘고향의 봄’이 연주가 되었다. 아코디언 연주로 듣는 ‘고향의 봄’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옛 고향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었다. 연주가 끝나고 또 그 다음 이야기가 연주자의 입을 통해 흘러 나왔고, 주인공의 아픈 삶이 전개 되었다. 3남매를 두고 어느 날 홀연히 떠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주인공의 아픔이, 딸 우상임씨의 입을 통해 전개 되었다. 연기자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신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어머니의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그 호소력은 어디에 비길 수 없이 짙기만 했다. 공연도 무대 위 무대에서 펼쳐졌기에, 출연자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었다. ‘고향의 봄’ 연주에 이어서, ‘베라차오’, ‘섬 집 아기‘, ’애기 동백꽃의 노래‘, ’윙이 자랑‘,’전우여 잘 있거라‘, ’봄날은 간다‘, ’잠들지 않는 남도‘, 등이 이야기와 함께 연주되었다. 귀에 익은 노래가 연주될 때는 관객들도 함께 박수를 치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주인공의 남편이 보내온 옥중 편지(현재 제주도 4.3기념관에 기탁)

전쟁의 아픔을 ‘전우야 잘 있거라’ 연주로 표현하고 있는 장면

무대 위에 자그맣게 설치된 빔프로젝트 화면에는, 출연자가 풀어내는 이야기와 관련된 영상들이 펼쳐졌고, 이야기가 끝나면 그 이야기와 닮은 노래가 아코디언으로 연주 되었다. 공연의 끝자락에는 주인공 황금녀씨는 팔순의 노인이 되어서, 그 동안 말 못한 숱한 아픔들을 시로 풀어내는 모습이 영상으로 소개 되었다. 그 모습을 연주자인 딸 우상금씨와 관객들이 함께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이 이야기는 가공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이야기였고, 또 우리의 아픈 역사가 남긴 커다란 상처를 이야기 한 것이었다.

한 시간 가량 진행된 공연은 출연자의 담담한 내레이션과 함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코디언 연주가 조화를 이루는 특별한 공연이었다. 무대도 무대 위 무대여서, 출연자와 관객이 서로 마주보며 공감할 수 있는 근접 거리여서, 더더욱 감동 깊은 공연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 연주로 지난 아픔을 치유하며 희망을 안고 살아가자는 뜻으로, ‘하바나 길라’ 가 연주되고 공연은 끝이 났다. 작은 공연이었지만, 그 느낌은 작지 않았으며 그 울림 또한 어느 대 공연 보다 컸었던 그런 공연이었다. 멋진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한 극단 현장의 고능석 대표님과, 그리고 멋진 내레이션과 연주를 해 준 출연자이자 연주자인 우상임씨에게 박수를 보낸다.

<%@ include file="./inc/footer.j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