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명무명창전
춤과 소리로 하나되는 영호남화합 문화예술공연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 예술축제로 나갈 마중물이 되다
김 해 성(부산여자대학교 교수, 영남춤학회 부회장)
지난 11월 3일 토요일 저녁, 성산아트홀 소극장은 영호남의 명무와 명창을 보기위한 관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로비에 좌석권을 교환하기 위한 관객들이 길게 줄을 섰고, 미처 교환을 못한 이들은 시작시간이 임박해서야 표를 구해 가까스로 객석에 앉을 수 있었다. 이토록 객석을 가득 메울 만큼 많은 이들이 이번 공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영남과 호남을 대표하는 춤과 소리의 명인들을 한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뜻 깊은 공연을 기획한 곳이 바로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다. 공연전문 기획사가 아닌 문화예술진흥원에서 이와 같은 행사를 준비하였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의가 있다. 행사의 구체적인 취지는 영호남의 전통문화자원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계승ㆍ발전시키고자 춤과 소리로 하나 되는 영호남 화합의 장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날 공연은 크게 3부로 나누어졌는데, “춤이 소리를 부르고(1부), 소리가 춤을 깨우니(2부), 천지만물이 덩더쿵 얼싸 안구나(3부)”와 같은 캐치프레이즈에 따라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짜임새 있는 기획력이 돋보였다. 1부에서는 진주포구락무와 영제시조, 승전무가 공연되었고, 2부에서는 밀양백중놀이, 고성오광대, 판소리 흥보가가 선을 보였으며, 마지막 3부에서는 동래학춤, 판소리 적벽가, 진도북놀이가 이어졌다. 공연장의 무대는 양옆으로 전통춤과 놀이 및 소리 공연에 어울리도록 전통문양의 기와와 담장을 설치하여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아나운서의 프로그램 설명이 끝나자 1부인 <춤이 소리를 부르고> 에서는 과거 진주지역 교방에서 추어졌던 공놀이춤인 진주포구락무(경남무형문화재 제12호)로 공연의 막이 올랐다.
악사들이 무대 뒤에 배치되고 예능보유자인 박설자가 장구로 악을 치자 8명의 춤꾼이 편을 나누어 공놀이춤을 시작하였다. 2명의 무희가 각각 수술이 달린 공을 포구문의 풍류안 쪽을 향해 던지고, 명중한 이에게는 꽃을 주고 그렇지 못한 이에게는 눈언저리에 크게 퉁방울(먹점)을 그려 넣어 객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오고 박수가 쏟아졌다. 첫무대를 재미있는 공놀이춤으로 시작하여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진주포구락무가 끝나자 시조창인 영제시조가 이어졌다. 경남무형문화재 제34호인 이종록 영제시조 예능보유자와 최영화, 박준식이 각각 장구와 대금반주를 위하여 나란히 앉았다. 대금연주가 시작되자 악에 맞춰 이종록이 시조창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시조 중에서 특히 영제는 다른 계통에 비해 씩씩하고 늠름한 경상도 사람의 기질이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는데, 이종록은 이러한 특성을 잘 살려서 담담하게 시조창을 불렀다. 1부 마지막으로 승전무가 공연되었다. 악사들이 무대 뒤에 자리하고 국가무형문화재 제21호 승전무 예능보유자인 엄옥자가 승전무 전수교육조교인 김정희, 장영미와 이수자인 변지연과 함께 승전무 중에서 통영칼춤을 추었다. 특히 이날 공연은 어머니 엄옥자로부터 중견무용가이자 딸인 변지연으로 이어지는 2대가 함께 승전무를 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승전무는 충무공을 추앙하며 전승을 축하하고 군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추어졌던 춤인 만큼 이날 칼춤에서도 권위와 장엄함이 배어있어 무게 있는 춤공연이 선보였다. 특히 예능보유자인 엄옥자가 뿌리는 칼날에서 품어져 나오는 노련미와 여유는 수십 년 동안 칼춤을 추어 온 흔적들이 그대로 묻어나 진한 여운을 남긴 공연이었다.
2부인 <소리가 춤을 깨우니> 에서는 밀양백중놀이로 그 시작을 알렸다.
나팔소리에 따라서 10명의 놀이꾼이 등장하고 상쇠인 박동영 국가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가 앞장서며 장구와 징 그리고 북을 멘 5명의 북잽이들이 앞으로 전진 해 오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어서 밀양 오북춤이 시작되었다. 마치 노동의 괴로움을 날려버릴 듯 크게 뛰어올라서 배기며 북을 치는 배김사위와 개인의 개성이 돋보이는 덧배기춤이 일품이었다. 다음으로 고성오광대가 뒤를 이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윤석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예능보유자가 말뚝이역을 선보이며 2과장을 중심으로 연희하였다. 오방색의 옷을 입은 양반들이 덧배기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다가 원양반과 말뚝이가 재담을 나누고 서로 배김사위를 하며 덧배기춤을 추는 대목이었는데, 이윤석의 기개가 넘치며 어깨 짓이 큰 말뚝이 춤이 일품이었다. 이번 무대는 마당놀이 종목이 지닌 꾸미지 않은 투박스러움 대신에 정형화된 세련된 이미지의 마당놀이를 감상할 수 있었다. 2부 마지막 순서는 판소리 흥보가였다. 이난초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가 소리의 주인공이었다. 흥보가는 일반 대중들도 잘 아는 내용이다 보니 관객들의 집중이 잘 되었고, 고수가 흥을 돋우자 객석에서 절로 추임새가 흘러 나왔다. 특히 박을 타는 대목에서는 관객 모두 박수를 치며 판소리의 매력에 푹 빠져 들었다. 마지막 휘모리장단에 맞춰 객석에서 손장단을 치며 즐거워하는 동안 아쉬움을 뒤로한 채 소리는 끝이 났다. 이후에도 한동안 앙코르를 외치는 판소리 마니아(mania)가 생겨날 정도로 호남의 소리에 영남의 관객들이 매료된 공연이었다.
마지막 3부는 <천지만물이 덩더쿵 얼싸 안구나> 로 부산을 대표하는 동래학춤이 시작되었다.
무대에 드라이아이스가 깔려 마치 학의 서식지와 같은 이미지를 연상할 때 쯤 이성훈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3호 예능보유자를 필두로 남성무용수들이 날음새를 하며 날아와 학춤을 추었다. 남자 무용수들의 힘이 느껴지는 춤이었다. 특히 활갯짓을 하며 무대 뒤로 들어갔다가 어둡던 조명이 다시 밝혀지면서 객석을 향해 일렬로 날아오는 모습은 가히 이춤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큼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다만 이날 공연에서는 시간관계상 다양한 배김사위를 볼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어진 공연은 호남의 소리로 판소리 적벽가를 송순섭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예능보유자가 불렀는데, 적벽가 중에서 새소리를 묘사하여 표현하는 새타령을 하였다. 송순섭은 부산에서 30여 년 동안 소리를 공부하여 오늘에 이르렀을 만큼 영남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탁성이지만 그의 소리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당대의 소리로서 존재한다고 느낄 수 있는 무대였다. 소리에 이어서 진도북놀이가 마지막으로 공연되었다. 박강열 전남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가 홀로 춤을 추다가 부산시립무용단 남녀 단원들이 가세하여 춘 진도북놀이는 그야말로 영호남의 춤꾼이 함께 어우러져 펼치는 공연으로써 의의가 컸다. 북채를 돌리며 춤을 추는 사위가 독특하고 매우 역동적인 춤이었는데, 특히 마지막에 북을 들고 뛰면서 도는 연풍대 동작에서는 관객들의 환호가 쏟아질 만큼 힘이 있고 박진감이 넘쳤다. 진도북놀이를 끝으로 모든 공연이 막을 내렸다.
영호남을 대표하는 춤과 소리의 문화재들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으며, 또한 이번 공연처럼 객석의 반응이 뜨거운 것도 근래 보기 드물었다. 그만큼 관객들은 좋은 공연에 목말라 있었다는 뜻이며, 따라서 이런 멋진 무대를 기획한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단발성이 아닌 지속사업으로서 영호남의 춤과 소리의 계승, 발전과 교류를 통한 화합과 소통의 장이 꾸준히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의 성과를 거울삼아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객석규모의 확대와 더욱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었으면 한다. 가령 한 작품에 영남과 호남의 춤꾼들이 함께 출연한다든지 혹은 호남의 소리에 맞춰 영남의 춤을 한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과 같은 적극적인 교류 프로그램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올해 성공적으로 영호남 교류전을 마무리 하였으니 앞으로 춤의 고장인 경남에서 영호남교류를 뛰어넘어 아시아의 문화 교류와 나아가 세계문화와 함께 할 수 있는 글로벌 축제로서 비상하기를 기대한다.
'사진 : 제3기 문화기자단 조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