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의거기념 창원시립무용단 창작무용극
역사 속 진실된 감정을 만나다
제4기 경남문화기자단 백수정
무용으로 재현되는 315부정선거 _사진출처 창원시립무용단
“그 어린 것이 왜 세상일에 관심을 가져가꼬...”
권찬주 여사는 아들 김주열의 영정 앞에서 아들을 그리며 노래한다. 창원시립무용단의 3·15의거기념 창작무용음악극 <소리없는 함성> 은 이렇게 시작된다. 평범한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가족이 부패한 국가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59년 전 3월 15일 그 날이 지난 3월 27일(수) 창원 성산아트홀의 무대에 다시 펼쳐졌다.
3·15의거는 마산에서 일어난 한국현대 민주주의 운동의 시초이다.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는 자유당의 부정과 비리로 얼룩지고, 남원에서 온 김주열(17)은 마산상고 합격을 확인하기 위해 마산에 왔다가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참가하게 된다. 이후 행방불명된 김주열은 4월 11일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마산 중앙부두에 주검으로 떠오른다. 이 사건은 전국적인 4·19혁명으로 이어졌고,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한다.
창원시립무용단은 지역의 민주화 역사인 3·15의거를 창작무용음악극이라는 장르로 선보였다. 지난해 위안부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무용 <동행> 으로 진지한 작품성을 인정받은 예술감독 노현식의 또 다른 역사물이다. 장르의 융합에 능통한 노감독은 3·15의거 정신인 ‘자유, 민주, 정의’의 뜻을 되새기고 민주성지인 창원을 알리기 위해 역사적 사실에 픽션과 감정을 더해 무용과 뮤지컬, 시민합창이라는 융합의 무대를 만들었다.
부정선거에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는 국민 _사진출처 창원시립무용단
투표소라는 오브제 그리고 몸짓
작품은 3·15의거 역사의 전체를 보여주기보다 59년 전 3월 15일 그 날과 그들의 감정과 순간에 주목했다. 투표함과 테이블은 무용의 오브제로 쓰였다. 투표소의 무용수들은 경쾌하고 기계적인 음악에 맞춰 움직인다. 정부는 국민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꼭두각시로 여겼다. 투표소, 투표함, 개표테이블이 매개가 되어 무용수들은 일사분란한 몸짓을 보여준다. 커다란 투표함을 신발처럼 신은 무용수는 투표소 안을 위협적으로 마구 휘젓고 다닌다. 투표용지를 확인하고 구분해서 버리는 절도있는 검표동작에는 재미있다는 듯 경쾌한 재즈풍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어이없는 그 순간들이 마치 코미디라도 되는 듯 말이다.
감정선을 잡아주는 뮤지컬넘버
뮤지컬 요소들은 전체적인 작품의 흐름과 감정선을 잡아준다. 작곡가 윤정인이 작곡 및 대본을 맡았으며, 김주열, 김주열의 어머니(권찬주), 학생대표, 민주당원, 경찰국장을 캐릭터화하여 뮤지컬 음악을 만들어냈다. 오래된 이야기들이지만 음악은 무겁지 않고 세련됐고 그날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음악에 담았다.
꿈 속에서 만나 오열하는 김주열과 권찬주 여사 _사진출처 창원시립무용단
클라이막스, 꿈 속 대화
주열이를 찾아 헤매던 권찬주 여사는 꿈 속에서 아들을 만난다. 다가가려해도 자꾸만 멀어지는 주열은 울먹인다. “엄마 여기 어디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아들아. 엄마 여기 있다.” “엄마 무서워요.” 정의와 민주주의를 외치던 듬직한 청년은 무자비한 정부의 폭력 앞에 쓰러져간 한 없이 나약한 엄마의 아들이었다. 권찬주 여사와 주열의 꿈 속 대화는 사회적 상황을 마주한 개인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희생을 보여준다. 평범한 누군가의 ‘내 아기, 내 새끼’가 그렇게 죽어갔다.
영혼을 위로하는 몸짓
부둥켜 울고 있는 엄마와 아들 앞에 무용수들이 영혼을 위로하는 춤, 진혼무를 펼친다. 하얀 옷에 하얀 한삼을 날리며 아름다운 선을 만들어낸다. 비참하게 죽어간 김주열 열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환하게 밝혀준다. 무대가 무용수들의 군무로 하얗게 그리고 눈부시게 뒤덮힌다. 봄날의 흩날리는 꽃잎 같다. 어린 김주열의 피우지 못한 봉우리가 그렇게나마 피어난다.
그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 무용단의 진혼무 _사진출처 창원시립무용단
100인의 합창, 역사가 현재와 연결되는 순간
마산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역사는 4·19혁명으로 이어져 이승만 독재를 끝냈다.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경상남도人합창단, 창원시여성합창단, 그린쇼콰이어, 창원시립합창단 등 100명의 시민합창단이 ‘승리의 함성’ 연합합창으로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작은 촛불을 하나씩 들고 점점 무대 앞으로 나아갔다. 저 멀리의 역사가 현재가 되는 순간이었다. 촛불을 받아 미래로 이어가야할 순간이었다.
권찬주 여사와 100인의 시민합창단 _사진출처 창원시립무용단
“무용수들의 몸짓과 무대연출, 뮤지컬 배우들의 노래들이 59주년 전 그 역사적 순간으로 돌아간 듯 한 생생한 무대였다.” 이순자(39, 창원시)
“음악과 무용이 멋지게 어우러진 것 같다. 역사적인 사실이 지루하지 않고 감동으로 다가왔다.” 전선영(10, 창원시)
역사는 멈추지 말고 새롭게 해석되어야 하며 계속 흘러야 한다. 역사가 예술을 만나면, 역사는 새로운 옷을 입는다. 역사와 예술의 결합은 새로운 세대를 위한 역사의 새로운 옷을 만드는 일이다. 역사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감정이기도 하다. 진실된 감정은 사실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어린 김주열이 느꼈을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정의를 향한 뜨거운 용기, 어린 아들을 잃은 권찬주 여사의 슬픔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다짐이 그것이다. 그것이 무용, 음악, 노래로 잘 버무려졌다. 이 날 우리는 ‘소리없는 함성’이라는 기억해야할 역사 속 진실된 감정을 만났다.
NTERVIEW
노현식예술감독 및 상임안무자
노현식 예술감독 및 상임안무자 _사진출처 창원시립무용단
- 어떻게 3·15의거를 작품화하게 됐는지?
- 4년 전 창원시립무용단과 함께 하게 되면서 처음 창원에 오게 됐는데, 3·15아트센터, 3·15기념민주묘지,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등 도시 곳곳에 315의거 역사의 흔적들이 무척 인상깊었다. 조금씩 자료를 모으면서 언젠가는 작품화해서 역사적인 의미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도시의 특징을 얘기할 때, 주로 자연, 산업, 축제 등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창원의 민주화 역사를 알리고 표현하는 것이 도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역사를 예술에 담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텐데...
- 3·15의거를 무용작품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과 방향이 필요했다. 단원들과 함께 3·15민주묘지 등 역사적인 장소들을 찾아다니며 연구했다. 직접 눈으로 그 현장을 보고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려했다. 민주화 역사를 다룬 다른 작품들을 모니터하면서 무용단만의 예술성을 더하고 머리가 아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권찬주 여사는 아들을 발견하기 전 아들의 꿈을 꿨다. “엄마 눈이 안 떠져요. 앞이 보이지 않아요.” 이것을 모티브로 하여 민주화와 모정을 연결했다. 예술의 힘은 감동이다. 그 의미를 직접적인 전달이 아닌 자연스럽게 마음에 닿는 작업이 되도록 노력했다.
- 이 작품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지?
-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진실성을 느꼈으면 한다. 3·15의거라는 역사적 순간 속의 감정들이 그대로 전해졌으면 한다. 창작 작품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한 땀 한 땀 새롭게 만들어야했다. 100명의 시민합창단의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도 각각 한 땀 한 땀의 진심이다. 315의거의 민주화 정신과 용기, 그 의미와 함께 그 의미를 담기 위한 예술가의 집념과 노력도 전해졌으면 한다. 이를 계기로 3·15의거라는 역사를 관객 모두가 어떠한 형태의 장르이든 자유롭게 표현하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