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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8 발행월 : 202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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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트렌드 느려도 아름다운 그들의 춤 경남지역 신진 작가 5명의 예술 세계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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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51 / 23-06-28 글 / 사진 신수윤 작가 ( 작품사진 도립미술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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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립미술관 ‘N ARTIST 2023: 더 느리게 춤추라’


“빠름을 강요하는 시대에 느림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느림이 성실함으로, 성실함이 꾸준함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됐으면 합니다.”

먼저 다녀간 어느 관람객이 남긴 손글씨의 내용이다. 

경남도립미술관 3층 4·5전시실에서는 지난 3월부터 오는 8월 27일까지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경남을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김예림·이혁·정현준·조현수·한혜림 등 신진 작가 5명의 예술 세계를 만나는 ‘N ARTIST 2023: 더 느리게 춤추라’이다. 

‘N ARTIST’는 도내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격년제 전시로, 2016년 시작해 올해로 네 번째 열리고 있다. 전시명에 내세운 ‘N’은 New, Neo, Non, Next 등 다중적인 의미로, 기존의 고립된 사회적 틀을 벗어나려는 신진 작가들의 실험적이고 대담한 활동을 지원하는 목적도 담고 있다. 올해 전시의 부제 ‘더 느리게 춤추라’는 데이비드 L. 웨더포드의 시에서 가져왔다.

다섯 작가들은 예술과 삶 모두를 즐기며 살아가는 이들이다. ‘경남’과 ‘청년’ 그리고 ‘작가’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지만, 각자의 작품 세계는 확연히 다른 이들이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염원하며, 각자의 답을 찾아가는 이들이다. 

김예림, 이혁, 정현준, 조현수, 한혜림 작가는 최대한 다른 색을 보여주자는 기획 의도에 맞춰 7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전시를 준비했다.

진심을 가득 담아 전하는 다섯 작가들의 이야기가 편견 없이 다가온다. 작가들의 예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됐다면 전시장으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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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경남도립미술관 외벽에 내걸린 전시 펼침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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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전시실 입구 전경> 



8월 27일까지 전시… 6월 26일~7월 10일 임시휴관


경남도립미술관 외벽에 ‘N ARTIST 2023: 더 느리게 춤추라’ 전시를 알리는 펼침막이 보인다. 6월 26일부터 7월 10일까지는 1·2층 전시장 재배치 작업 관계로 임시휴관이란다. 무작정 찾아온 미술관이었는데 헛걸음을 하지 않아 다행이다. 매표소에서 관람료 1,000원을 내고 티켓을 받아들고 3층 전시장으로 향한다.  

전시관 한편에 마련된 참여 공간에는 전시 기간 동안 다녀간 관람객이 이들 작가에게 남긴 메시지가 가득하다.

“엄마, 아빠, 가족들의 평소 모습, 목소리를 녹화하고 녹음해야겠어요. 소중한 순간의 기억을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게….”

“진짜 뭉클하고 눈물이 났어요. 이 메모를 적는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전시장에 나 혼자 있었다면 왕왕 울었을 거 같아요.”

전시회의 부제 ‘더 느리게 춤추라’처럼 작가들은 힘든 현실 앞에서 조금은 느리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이어나가고 있다. 현실의 가치를 바라보며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는 다섯 작가의 예술 세계는 우리에게 다양한 가치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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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관람객들이 남긴 메시지> 


 

김예림: 그의 작품들은 물음표의 연속


다양한 시간과 감정들의 중첩을 통해 관객에게 다양한 찰나와 새로운 순간들을 보여주는 김예림 작가. 그의 작품들은 물음표의 연속이다. 맞잡은 손, 키스를 나누는 남녀, 신생아 등 주로 사람이 담겼다. 마주 보는 두 남녀, 결혼식 하객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신혼부부, 치아를 드러내고 웃지만 왠지 묘한 느낌의 젊은 여성 등. 그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결혼식 인사 사진이 꼭 세상에 작별을 고하는 모습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 사진을 비롯해 각각의 장면들을 화폭에 담아 함께 설치했다. 작가는 자신이 느끼는 수없이 많은 감정과 모순된 감정을 은유적 이미지로 그려낸다. 가족 앨범·영화·웹서핑 등을 통해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를 나열해 감정과 기억의 관계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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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김예림 작 '당신이 기억하고 싶었던 사랑', 2023, 캔버스에 유채, 116.8x182.0cm> 



이혁: 북한 이주민으로서 내면세계 표출


이혁 작가는 북한에서 태어났다. 북한에 있는 예술전문학교에서 6년 동안 그림을 배우다 2006년 열아홉 살에 홀로 고향을 떠나 중국에 머물다 2009년 한국에 왔다. 한국외국어대 영어통번역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이혁 작가는 지난해 경남문화예술원이 운영하는 경남예술창작센터 15기 입주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주자의 정체성에 대한 내면, 권력과 이데올로기가 생산하는 사회적 모순을 그의 작품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개를 그린 자화상 시리즈에서는 한국에 온 자신의 모습과 한국 사회와의 관계를 드러내며 이주민으로서 작가의 내면세계가 여실히 녹아 있다. ‘문안도’와 ‘수하석상관월도’에는 어딘지 모를 쓸쓸함과 고요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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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이혁 작 '관월도', 2022, 캔버스에 혼합재료, 70x60cm> 



정현준: 편견과 혐오 이면의 소외된 자들 이야기


정현준 작가는 배달 오토바이 기사의 독백, 차 안에서 나누는 엄마와의 대화 영상을 통해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주로 경험과 일상에서 부서졌던 편견과 혐오 이면의 가려진 진실을 추적해 나아간다. 그가 수집한 이러한 이야기들은 은유적으로 구성된 영상과 사진으로 제시된다. 그의 작업은 고향 친구와 나눈 대화가 계기가 됐다. 배달 라이더인 친구는 술값을 내며 ‘내 요새 돈 좀 번다. 목숨 걸고 타면 700~800은 번다’고 말했다. ‘정의훈에게’는 작가의 자전적 영상 작업이다. 정의훈이었던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며 가족과 주변인들의 삶과 그 이면 이야기를 담아낸 약 28분 길이의 영상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도시화로 ‘밀려나는 삶, 사람들’에도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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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정현준 작 '정의훈에게', 2023,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루프> 



조현수: ‘그린다’보다는 ‘만든다’가 어울리는 작업


한국화를 전공한 조현수 작가는 재료를 연구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그러다 금속 중에서 동을 닥종이에 붙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부식된 부분이 전통 재료 닥종이와 결합할 때 형성되는 얼룩과 흔적, 빛과 시간에 따른 변화를 담았다. 자연적 재료에서 발견한 생명력과 에너지, 이들의 순환에서 비롯된 가치와 우연적 상황들을 회화로 표현한다. 금속 재료인 동의 산화와 부식, 전통 재료 닥과 결합할 때 형성되는 얼룩과 흔적, 빛과 시간에 따른 잠재적 변화들은 자연재료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울림으로 피어나게 된다. 동박을 부식액 농도와 기름, 열 등을 조정해가며 부식시키고, 닥종이를 구겼다 폈다 반복해가며 완성해 나가는 작업은 ‘그린다’보다는 ‘만든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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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조현수 작 '완전한 풍경', 2023, 닥지에 동박, 390x700x1500cm> 



한혜림: 희미해져 가는 삶의 유한함을 표현 


한혜림 작가는 희미해져 가는 삶의 유한함을 예술로 표현한다. 사람 사이 관계와 그 안에 녹아있는 기억, 흔적과 에너지를 작품에 담아낸다.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작가의 태도는 그의 예술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가치와 함께 그 의미를 더해 간다. 그는 남겨진 목소리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친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소리와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5채널 비디오 ‘파도라도’는 그의 할머니가 노래하는 목소리 녹음 파일을 이용했다. 할머니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한 파형에 맞춰 하얀 스크린 속 무용수들은 따로 또 같이 저마다의 춤을 선보인다. 소리가 재생될 때 일어나는 파형에 몸짓의 영상을 더해 존재와 살아있음에 대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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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 한혜림 작 '파도라도', 2023, 5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분 20초> 



“속도를 늦추라. 너무 빨리 춤추지 마라”


1시간 남짓 전시장을 둘러보고 이제 집으로 갈까 하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스무 살쯤 됐을까 한 청년이 전시장으로 들어선다. 그는 헤드셋을 끼고 작가의 작품 세계와 삶 속으로 빠져든다. 그렇게 그만의 아주 느리고도 조용한 관람을 한다. 이 여유가 그 청년의 느림인가 싶다. 눈으로만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오는 내가 부끄럽다. ‘더 느리게 춤추라’는 전시장에 와서 이게 뭐람. 최소한 하루 반나절이 필요하다. 다시 와야겠다. 

데이비드 L. 웨더포드의 시 ‘더 느리게 춤추라’가 오늘의 순간을 되새기게 한다.


속도를 늦추라.

너무 빨리 춤추지 마라.

시간은 짧고, 

음악은 머지않아 끝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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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 한 관람객이 헤드셋을 끼고 작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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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0) 전시장 모습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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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1) 전시장 모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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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2) 전시장 모습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