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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8 발행월 : 202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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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이슈 어린 예술가들이 사는 작은 예술촌, 거창연극고 학생들의 연극 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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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51 / 23-06-28 글 정재흔 작가 / 사진 거창연극고등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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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좋고 무대가 좋은 아이들이 거창연극고등학교(교장 강만호)로 모이기 시작했다. 연기는 물론 노래, 무용, 극작, 작곡, 연출 등 전 과정을 배울 수 있기 때문. 배움에서 그치지 않고 배움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학생들의 노력은 학교 안에서 보다 자유롭고 보다 반짝인다. 어린 예술가들이 사는 작은 예술촌, 거창연극고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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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거창연극고등학교 전경> 



연극·뮤지컬 중점 커리큘럼 운영


거창연극고는 폐교였던 위천중학교 부지에 세워진 공립 예술중점 대안학교다. 연극뮤지컬과를 중심으로 지난 2020년 개교해 올해 1기 졸업생을 배출했다. 3년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연극·뮤지컬에 관심 있는 학생이라면 알 만한 학교로 자리매김했다. 꽤 인지도 있는 학교지만 모집정원은 한 해에 30명. 한 학년당 딱 두 학급만 운영한다.

6명의 정교사와 15명가량의 외부강사가 학생들을 가르친다. 학생들은 오전에 국어, 영어, 역사 등 인문 교과 과정을 학습하고 오후부터 전공 수업을 듣는다. 전공기초로는 연극과 뮤지컬, 연기, 무대기술 등이 있고 전공심화 수업에는 노래, 녹음, 무용, 연출, 의상 제작, 무대 제작, 아크로바틱 등이 개설돼 있다. 매주 화·목요일 오후에는 무학년제 선택수업을 한다. 학교 특성상 수학, 과학 교과를 운영하지 않는다. 거창연극고 학생은 일반계 고등학생과 똑같이 대학 입학시험 응시 자격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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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거창연극고 학생들의 실습 수업 모습 1> 


18341f97a567ad8793c79e34902b80cf_1687925659_2643.jpg<사진 3) 거창연극고 학생들의 실습 수업 모습 2> 


18341f97a567ad8793c79e34902b80cf_1687925659_3663.jpg<사진 4) 거창연극고 학생들의 실습 수업 모습 3> 


18341f97a567ad8793c79e34902b80cf_1687925658_9623.jpg<사진 5) 거창연극고 학생들의 실습 수업 모습 4> 



진로 탐색을 적극 지원


거창연극고와 예술고등학교의 차이는 입시와 내신에 중점을 두느냐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예고는 대학 진학에 유리한 교육과정을 개설하는 데 비해 거창연극고는 학생 자발적인 진로 찾기를 지원한다. 학생들은 매 학기마다 LTI(Learning Through Internship)라는 진로 성찰 배움을 통해 자신의 전공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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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인터뷰를 하고 있는 학생들. 왼쪽부터 한벼리(3), 김혜빈(2), 김동유(3), 박성아(1), 김연주(3)> 


▲김연주(3학년)

“저는 지금 공연 기획을 전공하고 있어요. 원래 춤추는 걸 좋아해서 중학교 때부터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중3이 되니까 ‘교과 공부해서 대학을 가는 게 맞겠지’ 싶어서 진로를 계속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중요한 일인데 결정 내리기가 어렵잖아요. 나중에 제가 또 하고 싶은 일을 바꾸고 싶으면 어떡해요. 예고에 가게 되면 전공을 바꾸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찾아보다 거창연극고를 알게 됐어요. 연기도 해보고 춤도 추고 해보니까 입학할 땐 무용 전공이다가 연출 전공을 거쳐서 지금은 또 공연 기획을 배우고 있어요. 무대에 직접 출연하는 것보다 행정사무쪽 일이 제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김동유(3학년·부학생회장)

“디자인부터 셋업, 스트라이크까지 하는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저녁에 목공 동아리 활동을 했기에 조금 익숙했어요. 예고에 합격했는데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아서 여길 선택했어요. 무대 제작반에 들어가서 지금 3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1년에 두 차례 ‘다날다 발표축제’라고 불리는 LTI 발표회를 이행해야 한다. 발표회가 끝나면 곧바로 꿈★별공연예술축제에 작품을 출품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일과가 꽤 바쁜 편이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우는 소리 없다.

거창에 있는 학교지만 거창에서 나고 자란 학생은 전체 학년의 10%도 채 되지 않는다. 대구, 창원, 진주 등 영남권을 넘어 수도권에서도 학생들이 찾아온다. 대구에서 온 1학년 박성아 학생은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전공했고 다양한 분야를 접해 보고 싶어 거창연극고를 선택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기숙사에 입소할 것인지 자취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기숙사에 입소한 학생들은 거창군으로부터 기숙사비를 지원받는다. 공립이다 보니 학비가 없고 급식비는 지원이 돼 금전적으로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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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거창연극고 학생들이 만든 작품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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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거창연극고 학생들이 만든 작품들. 2> 


학생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체 중심 학교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또한 대안학교가 갖는 특징이다. 선후배 사이가 친밀하고 동급생끼리도 일반학교와 달리 따돌림, 폭력 등이 없다. 학교 내 전반적인 사안은 학생들이 의결한다. ‘노리터’라고 불리는 학생 전체회의에서 작게는 청소시간 지정부터 크게는 학교 행사 프로그램 구성 등을 토론한다.


▲한벼리(3학년·학생회장)

학생회가 바뀌고 제가 회장이 됐을 때 공동체 회의 자체의 무거운 분위기를 좀 없애고자 이름과 형식을 바꿔보려고 다 같이 얘기를 해본 적 있어요. 지난해까지는 동그랗게 앉아 있긴 했지만 말하는 사람만 말했다면 올해 ‘노리터’로 바뀌고 나서는 저학년들도 편하게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주도적인 학생들은 직접 학교 밖 공모전을 찾아 출품해 상을 타오기도 한다. 받은 상금은 다음 작품 제작에 쓸 종잣돈이 된다. 



우리의 끼와 실력을 펼쳐 보이는 무대


매 학기말 열리는 꿈★별공연예술축제에서 작은 예술가들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이 자리는 어른들의 걱정을 불식시키는 장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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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 거창연극고 학생들의 공연 모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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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0) 거창연극고 학생들의 공연 모습 2> 


▲김혜빈(2학년)

“엄마, 아빠는 예술 분야에 종사하셔서 입학을 허락해 주셨는데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제가 맏손녀다 보니 기대가 크셨어요. ‘예술로 벌어먹고 살기 힘든데 왜 굳이 연극고를 가야 하냐, 진짜 입학하면 용돈을 다 끊겠다’ 하시면서 완강하게 말리셨거든요. 그런데 지난해 정기공연 때 제가 ‘카르멘’에서 주인공 카르멘을 맡아서 가족들한테 보러 오시라고 초청을 했어요. 그때 할아버지가 제 연기를 보시곤 ‘그래, 너는 너의 길을 가라’고 인정해 주셔서 행복했어요.”


학생들의 무대는 매달 첫째 주 토요일 남계서원에서 볼 수 있다. 일두 정여창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거창연극고에서 1년간 대본, 작곡 등 준비를 거쳐 지난 5월 6일 첫 막을 올렸다. 무대는 10월까지 계속된다.

오는 9월께 거창연극고등학교 내 실내공연장이 개관하면 학생들의 무대를 볼 기회가 더욱 많아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