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이슈 “지역출판사는 기록자이자 문화자산의 보고” 출판문화 활성화 지원사업 선정 ‘뜻있는 도서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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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51 / 23-06-28 글 / 사진 정재흔 기자본문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했다. 이지순 ‘뜻있는 도서출판’ 대표는 책을 한 권 남기고 싶었다. 그러나 출판사 대표로서 단 한 권도 허투루 낼 수가 없다. 이름 그대로 ‘뜻있는’ 책을 찾으려니 남명 조식이 딱 좋겠다 싶었다. 그때에도 존경받는 스승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니 우리가 만든 그의 책은 후대에도 길이 남으리니….
<사진 1) 이지순 뜻있는 도서출판 대표>
세상의 물음에 답하는 출판사
이지순 대표는 ‘쇄소응대(灑掃應對)’란 구절을 좋아한다. 이는 어린 아이가 집안에서 해야 할 일과 바른 몸가짐에 대해 소학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다. 여기서 쇄소(灑掃)는 물을 뿌려 먼지를 쓸어내 청소하는 것이고, 응대(應對)는 어른의 명이 있으면 잘 대답하고 따르는 뜻을 안고 있다. 그러니까 어린이들에게 공부를 잘하기에 앞서 일상에서의 행동가짐을 바르게 하자는 뜻이다.
1564년 9월 남명 조식은 퇴계 이황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 쇄소응대하는 예절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天理)를 말한다. 이는 헛된 이름이나 훔쳐서 남들을 속이려 하는 짓이나 마찬가지이다. 선생은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므로 우러러보는 사람이 정말 많다. 선생이 충분히 억제하고 타이르는 것이 어떻겠나? 삼가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허권수 역 ‘조선의 유학자 조식’ 중)
조식의 기본 사상은 ‘내명자경 외단자의(內明者敬 外斷者義)’으로 “안으로는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敬)이고,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義)이다”라는 뜻이다. 즉, 이론과 실천을 동시에 행해야 한다는 당부이다. 이를 위해서는 쇄소응대, 즉 물 뿌려 비질하고 세상의 물음에 답하는 기본에 우선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지순 대표에겐 뜻있는 출판사가 그 답인 것이다.
<사진 2) 뜻있는 도서출판에서 최근 2년간 출간한 주요 책.>
고전이 갖는 현재적 가치를 담은 책
뜻있는 도서출판은 지난 2019년 설립됐다. 이지순 대표가 오랜 직장 생활을 퇴직 후 가치 있는 인생 2막을 열고자 만든 출판사다. 주요 출간 도서는 남명 조식과 동양철학에 관한 책이다. ‘새로 쓰는 주역강의(서대원, 2021)’, ‘부디 제발(강수돌, 2022)’, ‘조선의 유학자, 조식(허권수, 2022)’, ‘을묘사직소(2023)’가 있다.
“세월이 급변해도 동양 고전은 여전히 중요한 현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글과 생각을 번역하고 이것이 지금 이 시대에 어떤 뜻이 있는 것인지를 현재의 생각으로 풀어 책을 내고자 합니다.”
올해 지역서점·출판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돼 펴낼 책은 이러한 가치관에 바탕한 조식의 지리산 유람기를 담은 ‘유두류록’이다. 오는 9월 출간이 목표다.
<사진 3) ‘을묘사직소(2023)’>
<사진 4) ‘조선의 유학자, 조식(허권수, 2022)’>
<사진 5) ‘부디 제발(강수돌, 2022)’>
<사진 6) ‘새로 쓰는 주역강의(서대원, 2021)’>
왜 남명 조식인가?
뜻있는 도서출판은 지역출판사로서 남명 조식에 대한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있다.
조식은 옛 위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경남지역의 자랑이다. 퇴계 이황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이뤘지만 현대의 평가는 매우 궁색하다. 최근에서야 경남지역 출판계에 그를 조명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남명 선생은 화려한 벼슬자리를 거부하고 후학들을 길러, 훗날 그의 후학들이 모두 일어나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일어서 나라를 지켰습니다. 뜻있는 도서출판에서도 남명 조식 문집 대중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지역사회에서도 선생의 정신을 널리 알리는 일에 적극 나서주시기를 촉구합니다.”
뜻있는 도서출판은 조식을 필두로 경남에 관한 연구와 서적 출간을 계속해 지역의 숨겨진 요소에 대한 가치를 높이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자회사 사유악부 설립
이러한 작업에 맞춰 올해는 ‘사유악부’란 자회사를 만들었다. 인기 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현대문학을 중점적으로 다뤄 지역 문화자산을 발굴해 보겠다는 의지다. 지역 젊은 시인들의 앤솔로지, 김현미 시인의 시집, 신영인 작가의 에세이, 김원봉 장군에 대한 소설 등 출간을 준비 중이다.
사유악부를 통해선 젊은 작가를 발굴해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싶단다. 요즘 작가들은 등단보다 은둔(?)을 택하는 기류이므로 이에 맞춰 적극적으로 신예를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출판을 통해서 기존의 낡고 진부한 것을 새로 발견하고 발명하고 싶습니다. 지역출판사가 갖는 역할에는 단순히 기록도 있지만 그 기록을 통해서 문화 다양성과 지적 자산을 불리는 것도 포함됩니다.”
지역출판사로 생존하기
이지순 대표에게 잘 팔리는 책이란 잘 만든 책을 말한다. 만들기 까다로워도 읽을 맛이 나는 책. 그러다 보니 작가의 손에서 시작해 서점에 나오기까지 오래 걸린다. 대충 만드는 것도 아니니 비용 부담이 꽤 크다.
“지역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적 지원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뜻있는 도서출판은 좋은 책을 잘 만듭니다. 홍보 마케팅과 굿즈 제작 등 맞춤형 지원이 필요합니다. 수출 개척도 좋은 방법이죠.”
1인 출판, 독립출판과는 규모 면에서 다르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도 쉽지가 않다. 출판이 사양산업이라지만 지역출판사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힘들어도 멈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