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스페이스 경남예술창작센터 박준우 작가의 작품세계 발길 닿는 대로,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림으로 담다
페이지 정보
vol. 57 / 23-12-14 글 김규남 작가 / 사진 박준우 작가 제공본문
화구(畫具)를 들고 발길 닿는 대로 길을 나선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림의 소재가 된다. 순간의 온도와 빛의 방향, 바람의 움직임까지 보고 나서야 비로소 붓을 들 수 있다. 그래서인지 박준우 작가의 작품을 보면 그 당시의 현장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박준우 작가
경남예술창작센터 16기 입주작가 결과전 <발화점> 전시장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
지난 11월 15일부터 29일까지 창원 갤러리 이목에서 경남예술창작센터 16기 입주작가 결과전이 펼쳐졌다. 저마다의 창작 행위를 통해 자신만의 발화점을 유지하며 예술혼을 불태운 작가들의 결과물이 대중에게 선보이는 날. 시각부문 입주작가로 참여한 박준우 작가는 지난 8개월간 직접 경험하고 그린 ‘합천’의 이모저모로 전시공간을 채웠다.
관람객들이 박 작가의 작품 앞에서 발길을 멈춘 이유는 색다른 시선 덕분이다. 대개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춰 작품이 전시되기 십상인데, 박 작가의 작품은 다양한 눈높이로 전시됐다. 그림을 그릴 당시 작가가 바라본 높이를 관람객도 그대로 느끼게 하기 위해 높낮이를 달리했기 때문이다.
“합천 낙동강 지류를 그릴 때는 강둑에 앉아 있었거든요. 그리고 양파밭을 그릴 때는 바닥에 앉아 있었고요. 그림을 그릴 때 제가 바라본 시선의 높이를 전시장에서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박준우 작가는 작가의 시선을 전시장에서도 느끼게 하고자 높낮이를 달리해 그림을 전시했다.
낙동강
합천의 풍경을 담다
박준우 작가는 주로 사생화(寫生畫: 실재하는 사물을 보고 모양을 간추려서 그린 그림)를 그리고 있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합천에 위치한 경남예술창작센터에 입주해 작업한 만큼, 합천의 풍경을 그림으로 담아냈다. 박 작가는 센터에 머무르면서 두 발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주변을 자주 돌아다녔다. 눈으로 보고 만나는 풍경들 중에서 작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풍경이 있으면 바로 화첩을 펼쳐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합천에 있는 동안 그는 늘 자전거와 함께였고, 언제나 가방 안에는 화첩과 화구가 들어 있었다.
낙동강
“제가 사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시선이 머무는 곳을 둘러보고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저는 머무르는 장소가 달라지는 걸 의미 있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번에 경남예술창작센터에 입주하면서 합천을 알아가는 시간이 정말 좋았어요.”
낙동강 그림은 화첩을 들고 소풍 떠나듯 합천을 둘러보면서 그린 그림이다. 소풍 갈 때마다 화첩을 펼쳐놓고 두 면씩 풍경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꾸밈없이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를 그림으로 담다 보니, 처음 시작할 때는 녹음 무성한 푸르른 강변이었던 것이 작품의 마지막 장은 가을로 물든 강변의 모습이 담겼다.
작가의 그림을 보면 계절의 변화는 물론 그릴 당시의 날씨와 구름 모양, 그림 그린 시간대도 알 수 있다. 화창한 날의 강 색깔과 해가 저물 때쯤의 하늘 색깔이 어떤지 현장감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좋다. 물론 모두 같은 날에 그린 그림처럼 관람객을 속일 수도 있었지만, 순간의 풍경과 감정을 꾸밈없이 담기로 했다.
낙동강 작품 안에는 계절의 변화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수평에서 수직으로, 공간을 고민하는 시간
그는 창원이라는 도시에 터를 잡고 살면서 늘 높이 솟아 있는 건물만 보고 살았다. 그런데 합천에 가서 풍경을 바라보니, 고즈넉한 농촌의 풍경은 높이보다는 옆으로 더 많은 이야기들이 그려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고즈넉한 풍경처럼, 수직보다는 수평의 시선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은 진해 레지던시에 있을 때도, 울릉도 레지던시에 있을 때도, 그리고 이번 합천 레지던시에 있을 때도 수평의 시선으로 세상을 그려 냈다. 작품을 보고 있을 때만이라도 한없이 높이 바라봤던 시선을 조금 낮추고, 이제는 옆으로도 시선을 돌려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양파밭
발길 닿는 대로, 더 멀리 나아가다
“레지던시에 들어가면 말보다는 그림에 더 집중하게 돼요. 평소 하던 말을 조금 줄이고 그 시간에 그림을 더 그리게 되는 거죠. 새로운 공간을 알게 된 것도 좋았고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된 것도 좋았습니다.”
작가에게 레지던시는 그림에 집중할 시간을 주고 재료비를 충당해 주는 등 작가에게 많은 기회를 준다. 박 작가에게도 이번 경남예술창작센터 입주는 많은 기회가 되어 주었다. 작업할 때의 마음가짐이나 작업물을 대하는 태도 등 많은 면에서 도움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작가로서 외연이 넓어지는 시간이었다.
이제 그는 조금씩 멀리 나아가려 한다. 올해 초 서울에서 열린 독립 아트페어 참가가 인연이 되어 내년 2월 중순에 서울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또 3월에는 창원 파티마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고, 4월에는 진해에서 전시를 펼칠 예정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성실하게 그림을 그리며 창작세계를 넓혀나가고, 관람객과 만날 기회도 조금씩 늘려 나가고 있다.
작가는 그림으로 말한다. 입을 열어 작품을 정의하는 순간 관람객은 스스로 사유하고 느낄 기회를 빼앗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작가는 스스로 자신을 정의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그래서 대신 그를 정의해 보기로 했다. 소풍 가듯 세상에 나가 발길 닿는 대로 나가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작가, 성실하게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 어떤 정의도 그를 모두 담아내긴 어렵겠지만, 그는 오늘도 변함없이 발길 닿는 대로 나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림으로 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