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트렌드 ‘함께하는 영원의 시작’ 경남도민의 집에서 구상조각 김영원 작가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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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57 / 23-12-14 글 / 사진 김규남 작가본문
겨울의 햇살이 길게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오후, 아직은 온기를 머금고 있던 12월의 어느 날 경남도민의 집을 찾았다. 한 해의 끝자락에도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경남도민의 집에는 여전히 사람들의 발걸음이 계속되고 있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야외공연이 조금씩 줄어들어도 도민의 집에 가면 볼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경남도에서 기획한 ‘김영원 작가 특별전’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원의 시작
계절이 바뀌어도 전시는 계속됩니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따라 걷다가 경남 출신 조각계의 거장 김영원 작가의 전시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만났다. 관람객을 환영하는 손길을 따라 이끌리듯 경남도민의 집으로 들어갔다.
김영원 작가 특별전 <함께하는 영원의 시작>은 지난 12월 5일부터 시작해 2024년 2월 4일까지 경남도민의 집에서 펼쳐진다. 경남도와 진흥원은 경남 출신 거장의 작품들 도민들이 가까이에서 만나 볼 수 있도록 경남도민의 집 작품 전시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 첫 번째 전시로 창원에서 태어나 김해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김영원 조각가의 전시가 펼쳐졌다. 이를 시작으로 내년부터는 이성자 작가와 문신 조각가의 작품전 등 경남 거장의 전시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함께하는 영원의 시작> 전시회는 김영원 작가의 이름인 ‘영원’에 무한하고 영원하다는 의미를 더했다. 전시 제목처럼 ‘우리 모두 함께, 오래, 계속’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가득 담긴 전시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연작을 중심으로 시대별 흐름에 따라 전시가 구성됐다. 초기 작품인 <중력 무중력>부터 <그림자의 그림자>, 최근 작품인 <기(氣) 오스모시스> 시리즈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조각과 회화를 포함해 총 44점을 만날 수 있다.
포스터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 인간을 사유하다
도민의 집으로 들어서기 전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있었다. 인체의 형상을 한 거대한 청동 조작. 바로 김영원 작가의 작품이다. 도민의 집 야외 정원과 잘 어울리는 이 작품은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합1>로 작가의 작품세계가 잘 드러나 있다.
그림자의 그림자
작가의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는 인체와 똑같은 여러 개의 형상을 겹쳐 보여줌으로써 우리 내부에 여러 개의 자아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여러 개로 분열된, 그러나 하나로 이어진 작품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사회적 자아와 본질적 자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N잡러부터 다면적인 페르소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마음을 해체해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다.
도민의 집 내부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꽃으로 피어난 그림자부터 화려한 색을 입은 그림자까지, 나와 닮은 그림자들을 찾아보면서 천천히 작품을 감상해 나갔다.
영원의 시작
내면의 힘이 느껴지는 기(氣) 오스모시스
그는 기공 명상을 통한 작품세계를 펼치며 ‘기(氣) 오스모시스’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자리에 위치해 있다. 작가는 평소 기 수련을 해 왔으며, 이를 작품세계에 그대로 녹여 내고 있다.
작가는 지난 1994년 제22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대한민국 대표 작가로 참가해 명상을 통한 기 조각과 퍼포먼스를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그 이후로도 기공 명상에 대한 예술 행위를 하나의 방법적인 대안으로 제시하고, 외부의 기와 내재된 기가 만나는 기공 명상을 통해 스스로 형태를 남기는 기공예술 작품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도민의 집 전시장에서는 기(氣) 오스모시스 작품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다. 내면의 기를 끌어모아 손끝으로 담아내며, 그저 손과 붓이 움직이는 대로 형상을 만들어 낸 작품들이다. 기공예술 작품 옆으로 기(氣) 오스모시스 작품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 영상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상에서 작가는 “어린 시절 낙동강변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보거나 바람에 출렁이는 보리밭을 보며 자랐다”라고 설명했다. 작가의 말을 듣고 보니, 내면의 기와 외부의 기운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 낸 기공예술 회화 작품에서 보리가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영원의 시작
구상조각의 거장이자 공공미술에 한 획을 그은 작가
그는 지난 2008년 제7회 문신미술상 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구상조각계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다. 구상조각(具象彫刻)은 인체, 혹은 사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구체적 형상을 지닌 전통적 의미의 조각을 말한다.
구상조각의 거장 김영원을 모르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그가 세운 공공예술작품 <세종대왕 동상>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거대한 청동 조각상, 세종대왕 동상을 만든 작가가 바로 그다. 동대만 DDP 앞에 기증된 <그림자의 그림자> 작품 역시 그의 대표적인 공공미술 중 하나다.
김영원 조각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중력 무중력 시리즈>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우리가 그동안 ‘김영원’이라는 조각가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알게 됐다. 경남 출신으로 세계에서 인정받은 작가 김영원과 그가 조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작품세계를 알기에 충분한 전시였다.
점점 추워지는 이 겨울, 따뜻한 집 안에서 뜻깊은 전시 한 편을 즐겨 보자. 도민의 집에서 열리는 <함께하는 영원의 시작>전은 2024년 2월 4일까지 계속된다.
세종대왕 동상
영원의 시작
☞ 김영원(1947~) 작가
한국 구상 조각의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높인 작가로, 50여 년 동안 인체 조각을 고수하며 독보적인 입지를 확립했다. 시기별로 <중력 무중력><기공예술><그림자의 그림자> 연작을 거치며 한국 구상 조각의 독자적인 시각과 이론을 정립했다.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을 비롯해 공공건축물과 어우러지는 작품으로 대한민국 공공미술에도 중요한 업적을 세웠다. 1994년 제22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석해 ‘동양의 정신과 현대미술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비엔날레 최고의 작가’라고 평가받기도 했다. 2013년에는 이탈리아 국민 조각가인 노벨로 피노티와 함께 대규모 2인전을 개최하면서 한국 인체 조각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