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트렌드 “김해한글박물관으로 한글 소풍 어때요?” 2021년 개관한 공립박물관 최초 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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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55 / 23-10-30 글 / 사진 이정현 작가본문
“今日 珈琲 一盞喝可?” 읽어보시라. 그렇다면 “今日コーヒー一杯飲もうか”는 어떤가?
한글이 없거나 사라진 세상이라면 우리는 이토록 어렵게 글을 써야 한다.
이두(吏讀)나 외국어가 조금 불편하다고 느끼는 지점에서 더 나아가 본다. 언어학 연구의 권위자인 허발 고려대 명예교수는 ‘언어와 정신’이란 책에서 “인간은 평생을 통해 자신의 모어(母語)에 의해 제어되고 모어는 실제로 인간을 대신하여 사유하는 언어이다”라고 했다. 일상에서 먹고 자고 쉬는 모든 행위에도 모국어가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낯선 언어를 읽어 본다. 아무래도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다.
지난 10월 9일은 제577돌을 맞은 한글날이었다. 한글날에 즈음해 공립 김해한글박물관으로 ‘한글 소풍’을 떠나보았다.
사진 1) 김해한글박물관.
사진 2) 김해한글박물관 1층 로비.
사진 3)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에 아이들의 한글날 기념 그림이 붙어 있다.
한뫼 이윤재·눈뫼 허웅 등 국어학자 기리는 박물관
김해한글박물관은 공립박물관 최초의 한글박물관으로 지난 2021년 개관했다. 민족 최대 문화유산인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지역 출신 근현대 국어학계의 거목 한뫼 이윤재(1888∼1943)·눈뫼 허웅(1918∼2004)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 지상 2층 규모에 기획전시실과 1‧2전시실, 특별전시실, 수장고 등으로 조성됐다.
지난 제577돌 한글날 행사 때는 무려 4,000명이 김해한글박물관을 찾았다. 특별한 행사가 없어도 이곳은 꽤 인기 있는 장소다. 하루 평균 평일 200명, 주말 300명가량이 방문한다.
김해한글박물관은 부산김해경전철 수로왕릉역 1번 출구에서 200여m 옆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하다. 견학 온 어린이집, 유치원 원생들은 물론, 바로 뒤 나비공원에서 산책하던 주민들이 종종 들른다.(나비공원은 오는 11월 1일 ‘한글문화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될 예정.) 가까운 창원, 부산 시민들뿐만 아니라 울산, 대구에서도 찾아온단다. 지난해 개관해 이제 2주년을 맞았는데 벌써 누적 방문객 수만 약 3만4,000명이나 된다.
아담한 로비에는 인기를 방증하듯 아이들이 손수 만든 안내 책자며 전단 같은 것들이 비치돼 있다. 종종 인근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만들었다며 갖다 놓는단다. 아이들의 한글 사랑은 2층 계단 난간까지 이어진다. 한글날 행사 때 고사리손으로 열심히 그리고 쓴 그림들이 난간에 빼곡히 나붙었다. 작은 바람이 일자 ‘세종대왕님 감사해요’, ‘한뫼눈뫼 선생님 사랑해요’ 등 문구가 나부낀다. 삐뚤빼뚤한 것이 한글을 배운 지 오래되지 않은 모양이다.
사진 4) 전시실이 있는 2층 로비엔 김영원 작가의 세종대왕상이 있다.
사진 5) 용비어천가 영인본.
사진 6) 특수제작한 거울형 용비어천가.
사진 7) 용비어천가 120장.
작은 세종대왕과 용비어천가 속 애민정신
2층에 올라 바로 보이는 공간에는 ‘한글이 지나온 순간’ 디오라마 8종이 펼쳐져 있다.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잠깐 읽어 본다. 아이들 눈높이로 한글 창제 과정과 일제강점기 전후 한글을 지켜온 역사를 설명해놓았다.
한글을 누가 만들었는지 설명할 때에는 오른쪽을 보게 하자.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작은 세종대왕이 거기 앉아 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상과 크기만 다른 것이다.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조각한 김영원 작가가 김해시와의 인연으로 지난여름 김해한글박물관에 기증했다.
세종대왕의 눈짓을 따라 순순히 어두컴컴한 특별전시실(영상실)로 들어가 본다. 온통 어두운 전시실을 환하게 비추는 건 거울로 특수 제작한 용비어천가 전문이다. 1447년 한글로 쓴 최초의 노래 ‘용비어천가’는 첫 구절 “육룡이 나르샤”로 익히 알려져 조선 왕업의 정당성을 찬양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선전물로 보곤 했다.
그러나 김해한글박물관에서 만난 용비어천가의 본모습은 기억과 많이 다르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을 권계(勸戒)하는 애민정신이 빛난다.
지난해 김해한글박물관에선 한글날을 기념해 용비어천가 원본을 특별전시한 바 있다. 현재 전시되고 있는 건 국립한글박물관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제작된 영인본(복제 인쇄물) 전체다. 영인본 옆으로 조명이 설치된 패널을 통해 둥둥 떠다니는 순우리말 단어는 최초의 한글 사용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리로 마련됐다.
사진 8) 제1전시실에 있는 ‘보이는 수장고’.
사진 9) AR슬라이딩 비전을 통해 ‘보이는 수장고’ 속 소장품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 10) ‘조선말큰사전’은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사전을 만들고자 했던 조선어학회의 주도로 편찬 작업이 시작됐다.
방대한 소장자료 한눈에 보여주는 스마트 박물관
이윤재 선생을 주제로 한 제1전시실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진 ‘보이는 수장고’는 관람객들이 4,000점에 달하는 이곳 유물이 어떻게 보관되고 있는지 직접 볼 수 있도록 한 공간이다. 유리창 너머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신 기술을 결합한 ‘상호교류형 조선말큰사전’, ‘AR슬라이딩 비전’ 등을 도입해 관람객 누구나 가까이에서 유물에 관한 정보를 한눈에 얻을 수 있는 스마트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개화기 한국어 문법 연구의 대가 최낙복 동아대학교 명예교수는 개관 이전부터 현재까지 총 3차례에 걸쳐 한글문화유산 166점을 기증했다. 이윤재 선생의 ‘표준조선말사전’, 북한에서의 국어문법연구를 확인할 수 있는 ‘조선어문법’, ‘조선어이론문법’ 등 연구서적과 조선 개화기(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성서와 관련된 국어 연구를 살필 수 있는 ‘개화기국어자료집성’ 등이다.
눈뫼 허웅(1918∼2004) 선생의 장남인 허황 울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은 보관하던 고인의 유품과 의복, 감사패, 육필원고 등을 기증했다. ‘조선말큰사전’과 ‘큰사전’ 등 사전류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선 연구를 위해 발행한 연구서적, 1970년 이후 국어 교과서 등도 기증받았다. 조선말큰사전은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정책에 항거한 한글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말모이’의 모티브가 된 서적이기도 하다.
시민들도 기증에 한뜻을 모았다. 황동렬 ㈜홍기종합건설 대표가 기증한 잡지 ‘한글’은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이 조선어연구회를 만들고 국어 연구와 한글 보급을 위해 일제강점기인 1927년 2월 동인지 형식으로 발간한 잡지다. 편집인 겸 발행인은 신명균, 편집동인은 이윤재, 최현배 선생이고, 이윤재 선생의 글이 창간호에 실려 있다.
2017년 3월 당시 김상구 김해중부경찰서장이 기증한 ‘표준조선말사전’도 희귀자료다. 이 도서는 1957년 ‘큰사전’이 출간되기 전까지 현대의 규범사전 역할을 했다.
사진 11) 추억의 교실에서 옛 국어시험을 풀어볼 수 있다.
사진 12) 보물 '선조국문유서'는 한글로 쓰인 최초의 공문서다.
직접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이색 전시실
제2전시실은 허웅 선생의 집필 공간을 재현한 체험 공간과 역대 교과서를 전시한 추억의 교실 등으로 이뤄진다.
교실에서 만난 배민정(김해시 내동) 씨는 책상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 옛날 국어 시험을 풀어보고 있었다.
“도서관에 오가다가 들어오게 됐는데 전시가 정말 좋네요. 원래 한글날에 오고 싶었는데 너무 사람이 많아 못 왔거든요. 와보니까 정말 좋아요. 이윤재 선생님 동상이 나비공원에 있어서 이런 위인이 우리 김해 출신이구나 하고 알고는 있었는데 박물관에서 이윤재 선생님, 허웅 선생님 업적을 보니 정말 감사하고 대단하네요. 교실에 아이들도 풀 수 있을 만한 문제가 나와서 같이 꼭 오고 싶어요.”
이 밖에 2층에는 한글로 쓰인 최초의 공문서인 ‘선조국문유서’도 있다. 임진왜란 당시 쓰인 것인데 전쟁의 공과에 따라 상벌을 주겠다는 내용과 왜군에 협력하지 말라는 내용, 장수들에게는 ‘왜군에 붙잡힌 백성들을 구출하라’는 명령이 담겼다. ‘선조국문유서’는 왜군이 해석하지 못하도록 한문이 아닌 훈민정음으로 작성했다는 연구가 지배적이다.
‘김승태만세운동가’는 김해 장유만세운동 주동자인 김승태의 모친 조순남 여사가 쓴 것으로 100년 전 김해 장유 만세운동 과정과 아들이 투옥되고 고초를 겪는 과정을 내방가사체로 기록한 희귀자료다.
사진 13) 지난 10월 9일 한글날 기념행사로 옥상정원에서 펼쳐진 ‘꿈의 오케스트라’ 공연.
한글 소중함 일깨우는 다채로운 체험
3층은 작은 서가와 책 읽는 공간, 트릭아트가 있는 옥상정원 등으로 꾸며졌다. 이곳에선 지난 한글날 ‘꿈의 오케스트라’가 무대를 하기도 했다. 1층과 이어진 기획전시실 앞 공간에서도 소꿉전시회, 카메라 만들기 체험, 소풍 돗자리 무료 대여 등 특별한 한글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오는 11월엔 점자의 날(4일)과 개관 2주년(9일)을 맞아 4일부터 9일까지 체험 행사를 열 계획이다. 훈민정음 탁본 체험, 한글 캘리그라피, 점자로 이름 쓰기 등 모두 손으로 할 수 있는 활동으로 꾸렸다.
마지막으로 기획전시실을 돌아본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반갑게 맞아준다. 그 옆으로는 한글을 빛낸 사람들과 아이들이 손수 그린 그림과 글을 실감미디어를 통해 띄워놓은 벽이 있다. 박물관을 나가는 길, 얼핏 세종대왕을 다시 보니 후손들의 한글 사랑이 조선에서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져 흡족하다는 표정 같다.
☞ 한뫼 이윤재(1888∼1943)
이윤재 선생은 일제강점기 3·1운동으로 투옥되는 어려움 속에 교사로 근무하며 한글맞춤법을 제정하고, 조선어사전을 편찬하는 등 한글 보급을 통한 민족운동을 계속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고문으로 옥사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조선어연구회·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 집행위원,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위원으로 활동했다. 조선어학회 기관지 '한글' 편집 및 발행 책임을 맡았고 진단학회 창립에도 참여했다.
☞ 눈뫼 허웅(1918∼2004)
허웅 선생은 동래 고등보통학교 3학년 때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을 읽고 우리말을 연구하기로 결심,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다.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최현배 선생이 강단에서 내려오자 중퇴하고, 낙향해 15세기 국어 문법을 독학했다. 해방 이후 부산대, 성균관대, 연세대를 거쳐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다. 한글학회 회장과 이사장도 지냈다. 선생은 한글학회 회장을 맡아 한자 배격과 한글전용운동에 앞장섰고 일본어 잔재를 몰아내기 위한 한글운동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 김해한글박물관
*경상남도 김해시 분성로 221
*관람료: 무료
*이용 시간: 09:00~18:00(월요일, 1월 1일, 명절 당일 휴관)
*문의 전화: ☏080-380-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