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와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로케이션 인센티브 사업으로 지원한 오정민 감독의 영화 <장손>이 지난 10월 13일 막을 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KBS독립영화상, CGK촬영상, 오로라미디어상 수상 등 3관왕에 올랐다. 

<장손>은 경상도라는 폐쇄적인 가부장 문화권 내에서 한 번쯤은 마주했을 법한 상황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갈등, 대사, 감정선 등을 잘 담아낸 수작으로 세대 갈등을 몰입도 있게 완성했다. 합천군 묘산면·야로면·율곡면, 거창군 신원면, 함양군 영각사 등 경남의 곳곳을 아름답게 담아낸 시네마틱 연출도 인상적이다. 

수려한합천영화제 경쟁작 부문에 오른 영화 <장손> 상영 현장인 합천을 찾아 오정민 감독의 영화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사진 1> 오정민 감독.

<사진 2> 영화 <장손> 스틸컷. 

Q1.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 수상을 축하드린다. 소감은. 

부산에서 처음 관객들에게 영화를 선보이고 뜨거운 응원을 받게 돼 영광이다. 앞으로 국내외 영화제를 비롯해 개봉까지 수많은 관객에게 영화를 보여드리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 

Q2. 영화 <장손>은 어떤 영화인가.

두부 공장을 운영하는 삼대 대가족의 희로애락을 보여주는 가족영화다. 다른 가족영화와 다른 <장손>의 매력은 대가족이 변화하는 ‘시간’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긴 시간 동안 변화하는 한 가족을 바라보고 관객들이 함께 체험하면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거울과 같은 영화가 되길 바란다.

Q3.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한 작품이라던데 영화 속 장면과 어떤 부분이 같고 어떤 부분이 다른가.

실제로 가족들이 두부 공장을 운영한다는 점, 가족의 상실을 경험한 어린 시절 기억을 제외하면 대부분 창작된 이야기다. 

<사진 3> 영화 <장손> 촬영 모습. 

Q4. 영화 배경은 대구인데 합천과 거창 등지에서 촬영한 이유는.

<장손>은 지역성이 중요한 경상도 영화다. 경상도 특유의 보수적이고 유교 문화가 강한 지역의 정서를 제대로 담고 싶었다. 물론 수도권에서 더욱 편하게 찍을 수도 있었지만 연출자로서 꼭 경상도 안에서 찍어야 한다는 제한을 뒀고, 프로듀서도 동의해서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대구에서 적절한 로케이션을 찾지 못해서 합천, 거창, 함양, 고령 등을 돌아다니며 촬영했다.

Q5. 경남 로케이션 인센티브 지원사업이 어떤 도움이 됐나. 

 합천이 주 로케이션으로 확정되고 나서 경남 로케이션 인센티브 지원사업의 도움을 얻기 위해 합천에서 가까운 경남지역을 로케이션 대상으로 삼았다. 모든 촬영이 지방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숙박비, 식비 등 부담이 매우 컸는데 경남 로케이션 인센티브 지원사업이 큰 도움이 됐다. 덕분에 작품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Q6. 촬영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장손>은 날씨와의 전쟁이었다. 여름 촬영 때는 태풍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조생종 벼를 일찍 수확하는 곳이 있어서 파악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리고 가을 촬영 때는 단풍이 적절히 물드는 시기를 찾고 낙엽이 떨어지기 전에 촬영을 해야 했다. 겨울에는 프로덕션 기간이 2주밖에 되지 않아 눈이 내리는 장면을 찍기 위해 날마다 기도했다. 

배우 스케줄은 이미 정해져 있고 예산도 부족했기 때문에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는데 다행히 하늘의 도움으로 원하는 장면을 모두 담을 수 있었다. 날씨 운도 있지만 제작부와 연출부 스태프의 완벽한 사전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촬영이었다. 제작부와 연출부 스태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사진 4> 영화 <장손> 스틸컷. 

Q7. 영화 <장손>의 관전 포인트는.

그저 아무런 정보 없이, 편견 없이 즐기시면 된다. 관객들 각자의 관람 태도와 각자의 해석이 정답이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을 드리자면 엔딩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일어나지 마시고 영화와 함께해 주시기를 바란다. 

Q8. 가장 고심한 캐릭터는 누구인가.

저는 모든 캐릭터가 매력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그 누구도 도구적으로 쓰고 싶지 않았고 어떤 캐릭터의 입장에서 봐도 성립하는 영화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장손>을 만들었다.

Q9.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무엇인가.

주인공 성진이 여름에 할아버지와 함께 산을 오르는 장면이다. 아주 단순한 장면인데도 볼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어린 시절 추억에 잠기게 된다. <장손>에는 그런 장면들이 참 많은데 보는 사람들마다 각자 다른 장면을 뽑아서 그 부분이 참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장면은 어떤 장면일지 궁금하다.

Q10.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전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단순한 메시지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복잡하고 불편한 예술인 영화로 만드는 것이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자기네 이야기처럼 느끼고 자신의 삶을 들춰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사진 5> 영화 <장손> 스틸컷. 

Q11. 상경한 지역 출신 청년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인가.

  지울 수 없는 나의 DNA 같다. 도망치고 싶고 버리고 싶어도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게 된다. 

Q12. 언제부터 영화 연출에 관심을 가졌나.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

고등학교 때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창작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심야영화를 보러 많이 다녔는데 그때 경험이 아주 강렬했다. 원래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화양연화>에서 양조위의 표정 하나가 제가 쓴 100개의 문장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느끼고 배우와 영화에 관심을 가졌다. 부모님의 경우 처음에는 안정적인 직업을 추천하셨지만 결국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셨다.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Q13. 그간 연출한 <연지>(2016), <성인식>(2018) 등 작품을 통해 성장과 확장을 말해왔다. 스스로에게 ‘성장’이란 무엇인가. 또 그동안 몇 번의 ‘성장’을 겪었나. 

<연지>는 아직 겪지도 않아도 될 ‘성장’을 해버린 아이의 이야기였고, <성인식>은 ‘성장’을 유예해온 나약한 모녀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막상 연출자인 제 자신은 어떤 성장을 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제가 어떤 성장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다만 제가 아는 것은 영화를 하나씩 만들면서 조금씩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계속 영화를 만들고 많이 배우겠다. 

<사진 6> 영화 <장손> 스틸컷. 

Q14. 스스로에게 영화 <장손>은 어떤 의미를 갖나.

 감독 오정민의 첫 영화는 오직 이 영화여야 했다. 그래서 다른 제안과 아이템을 뒤로 미뤄두고 <장손> 작업에 몰두했다. 앞으로 점점 세트 위주의 가공된 영화들이 주를 이룰 텐데, <장손>은 자연 로케이션의 빛과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시네마틱한 영화로, 앞으로 만들기도 어렵고 찾아보기도 힘들 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Q15. 차기작으로 염두에 둔 소재가 있는지.

<장손>이라는 영화는 감독 오정민의 아주 일부분만 보여주는 작품이다. 앞으로 매번 다른 영화를 보여주는 창작자가 되고 싶다. 바로 다음 작품은 <장손>과는 아주 다른 판타지 장르의 드라마를 준비 중이다. 

Q16. 이 밖에 하시고 싶은 말씀은.

<장손>을 완성하는 데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오래 걸린 만큼 그 노력과 결실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 저는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고 결국 그 영화를 완성하는 건 관객의 몫이다. 영화제를 비롯해 개봉까지 자주 인사드릴 테니 <장손>에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린다. 

<사진 7> 영화 <장손>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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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손>은 미스터리한 무드로 끌고 가는 묘한 영화”

- 2023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홍은미 프로그래머

“3대로 이뤄진 대가족의 세속적인 풍경을 담담히 포착하며 영화를 시작하는 <장손>은 가족의 내밀한 가정사를 점점 더 미스터리한 무드로 끌고 가는 묘한 영화다. 영상 일에 종사하는 성진은 제사를 맞아 본가를 찾는다. 대부분의 가족들이 두부 공장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성진네는 가풍이 엄격하지만 활기 넘친다. 그들은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웃고, 이별을 맞는다. 그들이 맞게 되는 이별 중엔 죽음 또한 포함되어 있으며 그 죽음으로 인해 가족들은 파열을 일으킨다. 간결한 구성과 정갈한 화면 속에 생의 활력과 애환, 격정과 오래된 우울감이 배어 있다. 사건들 사이에서 파생되는 긴장과 생생한 계절감 속에서 개별 인물들의 표정과 풍경의 잔상을 오래 남기는 매혹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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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민 감독은 

1989년 대구 출생. 성균관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을 공부했다. 단편 연출작으로 <연지>(2016), <림>(2018), <CUT>(2018), <백일>(2018), <성인식>(2018)이 있으며, <성인식>은 전주국제영화제, 인디포럼 등에서 상영됐다. <장손>은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