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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8 발행월 : 202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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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트렌드 ‘가야고분군’ 오는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예정, 창녕 교동·함안 말이산 고분군을 둘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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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51 / 23-06-28 글 손남숙 시인 / 사진 경남도, 손남숙 시인, 서영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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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창녕엔 가야고분이 많은 편이다. 이른바 비화가야(非火伽倻)다. 1900년대 초 일본인에 의해 도굴 당했고 가야와 관련한 정확한 기록이 없어 지역민 사이에서도 이견이 많았다. 더러 폄훼 당하는 일도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앞둔 오늘날에는 아무도 가야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어릴 때 지금의 박물관이 있는 이문재 고갯길을 지나갈 때면 오른편으로 둥그스름한 무덤이 눈에 들어왔다. 너른 풀밭 같았다. 완만하게 경사진 무덤은 작은 동산 같았고, 해질녘 물들어가는 능선이 퍽이나 평화로웠다. 한때는 잘 몰랐고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수차례 발굴과 조사를 거쳐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이 복원됐고, 이제는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축임을 당당히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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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창녕 교동 고분군 1>18341f97a567ad8793c79e34902b80cf_1687922000_8132.JPG<사진 2) 창녕 교동 고분군 2> 


가야 관련 고분군 국내 780여 곳 분포

오는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것으로 기대되는 ‘가야고분군(Gaya Tumuli)’은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등 영남과 호남에 있는 가야 유적 7곳을 묶은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가야와 관련한 고분군이 780여 곳에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 어마어마한 시간저장고다. 1~5세기경 이 땅에 살았던 최고지배층의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과 유물은 당시의 습속과 살림살이, 기술과 문명, 교류 등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고분과 왕릉은 무엇이 다를까? 사전에서 찾아보면 고분(古墳)은 ‘고대에 만들어진 무덤’, 왕릉(王陵)은 ‘임금의 무덤’을 말한다. 왕릉은 무덤의 주인이 알려진 곳이 많지만 가야고분의 무덤은 주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가야고분군에는 7호분, 12호분 등의 일련번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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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함안 말이산 고분군 1> 


지금 ‘교동 고분군’과 ‘말이산 고분군’은…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벼르다가 최근에 다녀왔다. 높낮이가 다른 무덤과 획일적이지 않은 전경이 특별한 감흥을 주었다. 말이산(末伊山)은 ‘머리’와 ‘산’을 한자로 표기해 합친 것으로 ‘우두머리의 산’이라고 한다. 나지막한 구릉,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인위적이지 않고 경사면에는 작은 무덤이, 꼭대기에는 대형 무덤이 있어 그윽한 격이 느껴졌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편편하지 않은 지대인데도 인공물이 많지 않았다. 말뚝이 없었고 경사진 바닥에는 야자 매트를 깔아서 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부드러웠다. 
마침 봄날이었고 볕이 좋아서인지 나들이 나온 가족, 연인들이 많이 보였다. 내 앞에는 장난꾸러기 꼬마와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꼬마가 뒤돌아와 물었다. “뭐 찍어요? 왜 찍어요?” “풀이 예뻐서 찍어.” 아이의 눈망울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누구라도 궁금하면 알려고 하고, 알면 지키게 된다. 어린 시절 고분에서 보낸 기억을 가진 아이는 아마도 세상의 보물을 알아차리는 일에도 남다른 기질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창녕 교동 고분군에는 일부 무덤 사이로 길이 나 있다. 경계와 울타리를 만들어 고분을 관리하려는 목적과 통행의 편리성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고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즈넉하고 은근한 멋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잔디에 플라스틱 매트를 깐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플라스틱은 잘 썩지 않으며 오늘날 심각한 환경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고분은 앞을 가리는 장애물이나 건물이 없고 무덤의 곡선이 주변 배경과 잘 어우러져 고분만의 멋진 경관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이질적인 덧댐은 풍경에도 흠이고 환경에도 우려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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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함안 말이산 고분군 2>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매력적인 곳

가야고분군은 문화유산의 중요성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장소적 매력이 있다. 전시된 유물은 뛰어난 예술적 가치에 감탄하지만 일반적인 삶에 스미지는 않는다. 
고분은 자연 그 자체이며 역사적인 현장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다. 1,500년 전, 그 일대를 거닐었던 사람과 똑같이 걷고 말하고 웃는다. 그곳에서 울고 웃던 사람의 발바닥이 닿았던 장소를 함께하는 것이다. 장소의 공통된 시간이 묻는 것은 기억을 거슬러가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위대한 유산이 현실적인 유산으로 넘어오는 순간에 있다. 무덤은 죽은 자의 영혼이 깃들어 있어 엄숙한 장소로 인식되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산 자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때 활발해지는 생명체와 같다. 우러러 모시기만 한다면 관리의 대상일 뿐이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유무형의 유산 중 고분은 적극적인 매개가 되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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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함안 말이산 고분군 3> 


과거와 현재가 정답게 맞물려 돌아가는 곳

점심시간에 잠시 산책하러 나온 직장인, 운동하러 나온 노년부부, 소풍 나온 가족과 아이들은 몸과 마음을 가뜬하게 하며 즐거이 역사와 한바탕 놀고 간다. 
고분은 열린 장소다. 사계절 어느 때라도 갈 수 있고 고분만이 주는 멋과 매력을 누릴 수 있다. 이른 봄, 고분은 유려한 곡선에 초록을 펴놓은 듯이 온화한 미를 보여준다. 여름날 외지게 선 팽나무 아래 서서 멀리 뻗어 있는 들판을 내려다보면 뜨거운 볕도 등 뒤로 물러나는 것 같다. 선들바람 부는 가을은 지평선과 하늘의 광활함이 맞닿은 듯 시원스러운 맛을, 눈 내리는 겨울 고분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우리 영혼을 맑게 한다. 그 둥근 매무새, 부드러운 굴곡, 어슷하게 내려가는 그늘과 흘러가는 구름을 보노라면 과거와 현재가 정답게 맞물려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자연이 된다. 그 자연의 위대한 축적이 가야고분이고 죽음과 삶이 다정히 어우러지는 장소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역사와 사람, 역사와 자연은 깊게 이어지는 물줄기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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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함안 말이산 고분군 출토 수레바퀴모양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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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함안 말이산 고분군 출토 굽다리등잔> 

우리네 삶과 가까이 있어 아름다운 ‘가야’

창녕 교동 고분군에서 바라보는 서쪽은 아름답다. 노을이 질 때 문득 차를 세우고 고분으로 향한다. 저물어가는 하루의 끝에서 밝음이 어두움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느끼는 것이 놀랍고 가슴이 벅차다. 대가야, 금관가야, 아라가야, 비화가야 사람도 해가 질 때는 서쪽을 보았을 것이다. 2023년 오늘을 사는 사람도 서쪽을 본다. 그리고 다음 날 힘차게 떠오를 해를 기다린다.
가야고분군은 인류가 기억해야 할 세계문화유산이자 찬란한 우리의 역사로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네 삶과 가까이에 있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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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 창녕 교동 고분군 겨울 모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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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 창녕 교동 고분군 겨울 모습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