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 검색

Vol.58 발행월 : 2024. 4

close
게시물 검색

휴먼&스페이스 도시청춘, 남해 대지포에 살러 오시다! 2023 경남문화우물사업 ‘대지포레스트 시즌3’

페이지 정보

vol. 54 / 23-09-26 글 정재흔 작가 / 사진 정재흔 작가, 최성훈 씨 제공

본문

9e65933cace60a9b4bc82e05a3c1c9be_1695691117_5379.jpg

사진 1) 문화우물사업 대지포레스트를 실행하고 있는 최성훈 씨 1
9e65933cace60a9b4bc82e05a3c1c9be_1695691119_262.jpg

사진 2) 문화우물사업 대지포레스트를 실행하고 있는 최성훈 씨 2


 

남해군 삼동면 대지포마을은 50가구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 이곳엔 3년째 전국 도시 곳곳에서 청년들이 살러 오고 있다. 이름하여 대지포레스트(Daeji for rest).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생각나는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청년들은 잠시간 일상을 멈추고 농촌에 섞여 든다. 도시와는 전혀 다른 어촌마을 공동체에서 청년들은 어떻게 문화를 길어 올리고 있을까.



9e65933cace60a9b4bc82e05a3c1c9be_1695691143_7891.jpg

사진 3) 대지포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시간 1
9e65933cace60a9b4bc82e05a3c1c9be_1695691144_5371.jpg

사진 4) 대지포 마을 주민들과 서클대화 시간 2 

9e65933cace60a9b4bc82e05a3c1c9be_1695691202_2032.jpg

사진 5) 대지포 마을 주민들과 서클대화 시간 3
 


‘한 달 살기’ 청년들의 등장 


대지포레스트의 시초는 남해군 한 달 살기 사업이다. 도시청년들의 피로감을 해소하는 방편으로 유행처럼 번졌던 ‘한 달 살기’는 코로나19로 전국에 확산됐다. 도시에서의 삶에 대한 스트레스, 바이러스 전파 위협 등에 지쳐 간절히 쉼을 원했던 청년들이 해외 출국마저 제한되자 국내로 눈을 돌린 것. 이는 청년층 이탈 가속화로 골머리를 앓던 지자체들에겐 호재였다. 

2020년 남해군이 청년친화도시로 선정되자 각종 청년 정책이 남해에 쏟아졌다. 2016년 귀향해 남해에서 살고 있었던 최성훈(37) 씨도 그 소식을 들었다. 그때 지인이었던 고광석 현 ‘살러(살ER)’ 대표가 남해군 촌라이프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해 보자고 제안한 것이 시초였다.

최 씨는 처음부터 대지포로 왔던 건 아니었다. 삼동면에 위치한 꽃내활성화체험센터는 숙소, 연회홀 등을 갖추고 있어 한 달 살기에 당시로선 적합했다.



대지포에서 나고 자라 서울로 대학 간,  

이웃집 손자였던 최성훈 씨

고향마을 대지포에 순조롭게 안착



9e65933cace60a9b4bc82e05a3c1c9be_1695691171_5649.jpg

사진 6) 한 달 살러' 참가자들과 함께 



“마을은 곧 주민” 대지포로 옮겨 프로젝트


2020년 촌라이프 프로젝트 1·2기, 2021년 3기를 마칠 즈음이었다. 2021년 4기는 '대지포레스트 시즌 1'이라는 주제로 경남문화예술진흥원 문화우물사업에 도전해 선정됐다.

“센터가 민가와 좀 떨어져 있어요. 그러니까 주민들과의 살가운 지점이 거의 없는 거예요. 한 달 살기는 한 달을 완전히 지역에서 사는 건데 지역이 곧 주민이잖아요. 지역 주민들과 유리된 게 아쉬워서 그때부터 제가 살고 있는 대지포마을에서 프로젝트를 해보자, 마을 주민들과 긴밀하진 않더라도 초반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지는 않겠나 해서 옮겨 왔습니다.”

대지포에 안착하는 과정은 순조로웠다. 최성훈 씨가 대지포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대지포 주민들에게 최 씨는 대지포에서 태어나고 자라 서울로 대학을 간, 이웃집 손자였다. 외지 사람들의 유입에 마을 주민들이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거둔 것도 그 이유가 컸다. 

“마패 같은 거죠. 제 원래 이름이 장수인데 대지포레스트 친구들이 ‘저기 위에 장수 친구예요. 놀러 왔어요’ 하면 어르신들이 ‘그래 놀다 가라’ 하시고 그냥 두세요.”



대지포마을 곳곳 방치된 빈집에 착안

유휴공간이 된 앞마당 임대하고 

생활권 문화공동체 문화우물사업 실행



9e65933cace60a9b4bc82e05a3c1c9be_1695691190_3355.jpg

사진 7) 마을주민들과 함께하는 '으라차차 대지포' 
9e65933cace60a9b4bc82e05a3c1c9be_1695691190_3988.jpg

사진 8) 대지포마을 주민들 초청 영화상영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


2021년 4기부터 2022년 5·6기, 각 기수당 8명 안팎의 청년들이 대지포에 살러 왔다. 대지포레스트는 지원금으로 숙소 임대료와 식비를 지출하고 주말마다 자유시간을 갖는 방식이다. 평일에 공동체 프로그램을 수행하는데 내부적으론 관계 디자인으로 시작해 식단 짜기 등 공통 과제를 수행한다. 참여하는 청년은 누가 몇 살인지, 무슨 직업인지 등등 위계가 나뉠 수 있는 정보를 모르는 채 한 달을 산다.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무슨 음식을 못 먹는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알아 가고 완전히 새로운 규칙으로 관계를 넓혀 간다. 

그다음이 외부, 마을 주민과 친해지는 시간이다. 마을은 고령화와 열악한 대중교통 문제로 문화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동네 행사라고는 1년에 한 번 있는 경로회가 전부다. 그마저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단됐었다. 

문화우물사업은 생활권 문화공동체 지원사업으로서 주민이 스스로 마을에 필요한 문화 활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도록 지원하는 게 골자다. 최성훈 씨는 대지포 곳곳에 있는 빈집에 착안했다. 

빈집의 무성한 잡초는 경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의 분위기도 어수선하게 만든다. 내 집도 아니니 관리가 어려워 방치해 놓은 집이 꽤 됐다. 

청년들은 유휴공간이 된 빈집 앞마당을 임대하고 제초 작업으로 말끔하게 터를 닦았다. 

무엇을 할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누구나 들러 차 한 잔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찻집’을 떠올렸다. 카페 알바 경험이 있던 한 청년의 아이디어였다. 

“마을 행사를 한다고 했을 때 누군가 전문적인 걸 배워야 하는 건 하지 않아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경험 중에서 하나를 꺼냅니다. 이를테면 요가를 했던 친구는 나름의 스트레칭 프로그램을 만든다거나, 노래 좀 부를 줄 아는 친구는 초대 가수로 나온다거나. 도시에선 알바나 스포츠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시골에선 흔치 않아요. 저희가 장수사진 찍는 프로젝트를 해본 적 있어요. 도시에선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선뜻 나서기 어렵지만 지역에선 귀중한 경험, 특별한 경험이거든요. 그게 지역이 청년들에게 줄 수 있는 큰 이점이라고 생각해요. 기회 말입니다.”



노래자랑, 영화상영회, 장수사진 촬영 등

별일 없던 마을에 별일이 계속 생기자 

어르신들도 청년들의 별스런 일을 기대




9e65933cace60a9b4bc82e05a3c1c9be_1695691202_2977.jpg

사진 9) 프로젝트 공유회
 


마을 히스토리의 일부가 되는 대지포레스트


찻집 ‘어서오시다방’을 개업하자 어르신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같은 마을에 살아도 친구가 아니면 왕래가 잘 없다 보니 처음엔 어르신들 서로가 데면데면하다 친해지고, 청년들과 말도 트고 마음도 텄다. 도시에서 왔지만 어른들께 살가운 친구들 덕도 분명 있었다. 

그다음은 노래자랑, 영화상영회, 장수사진 촬영, 전통 보드게임 등 별일 없던 마을에 별일이 계속 생기자 어르신들도 청년들의 별스런 일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저랑 마주치면 ‘올해는 노래자랑 언제 하냐’ 물어들 보세요.(웃음)”

최 씨는 사회문제를 문화예술적으로 풀어내는 문화우물사업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저희가 한 달 살러 오면서 빈집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한 건 아니지만 대지포 사람이자 요즘 시대 청년인 제가 가진 경험, 속성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빈집의 주인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둔 거예요. 집 전체를 관리하진 못하더라도 앞마당만이라도 관리해 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 봤어요. ‘우리’가 사는 마을이니까 주민들은 이 집 마당에서 차도 한 잔 마시고, 집주인들은 앞마당이 관리되니 서로 좋죠. 이렇게 신뢰 관계를 쌓아가면서 마을의 히스토리를 만들다 보면 대지포레스트도 마을 역사의 일부가 되겠죠.”



대지포레스트 3년 차인 올해

한 달 살고 간 청년들 불러 모아

특별한 마을 문화예술잔치 구상 중 




9e65933cace60a9b4bc82e05a3c1c9be_1695691227_472.jpg

사진 10) 마을 어르신 장수사진 촬용
 


마을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된 ‘문화우물’


최 씨는 마을이 활성화되려면 마을 내 주민자치 활동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마을의 히스토리가 쌓여야 경쟁력이 생기고, 사업적인 측면에서 어촌 뉴딜과 같은 거대한 국가사업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우물사업을 계기로 대지포마을 주민들과 상호발전적인 관계를 디자인해 가고 싶은 그는 요즘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대지포레스트는 2021년 예비마을로 선정돼 3년 차인 올해를 끝으로 사업을 종료하기 때문. 다음 프로젝트를 실행해야만 청년과 주민들이 쌓아 온 유대감이 사업 종료 후에도 연속성을 가질 수 있다. 

고민은 뒤로하고 최 씨는 올해가 마지막인 만큼 서로에게 뜻깊은 만남으로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특별한 마을 행사를 구상 중이다. 

그동안 한 달 ‘살러’ 왔던 청년들을 다시 불러 모아 동창회(?)를 여는 것. 마을 어르신들을 그리워하는 청년이 있고 마찬가지로 어르신들도 ‘그때 봤던 그 청년’을 문득문득 떠올리실 테다. 10월 중 성대한 문화예술잔치가 벌어진다는데 다시 돌아온 청년들은 어떤 재밌는 경험을 풀어놓을까, 대지포마을의 가을이 기대된다.


남해 살ER www.instagram.com/saler05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