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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8 발행월 : 202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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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페이스 2023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 극단 예도 ‘달호수를 찾아서’ 창작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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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56 / 23-11-29 글 정재흔 작가 / 사진 극단 예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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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극단 예도가 환상적인 동화 속으로 관객들을 초대했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 2023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으로 제작한 창작초연작 ‘달호수를 찾아서’(이선경 작, 이삼우 연출)다. 

‘달호수를 찾아서’는 11월 24일과 25일 양일간 거제문화예술회관 소극장 무대에서 막을 올렸다. 관람에 앞서 시연회장을 찾아 생생한 현장을 담아 보았다.



환경 문제와 인간의 욕심을 그린 ‘달호수를 찾아서’


거제문화예술회관에 위치한 작은 연습실, 문밖에서도 열기가 느껴질 만큼 단원들의 열정이 뜨거웠다. 이날 창작초연 ‘달호수를 찾아서’ 연습이 한창이었다. 극단 예도의 단원은 50여 명, 이번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10여 명이다. 모두 의상을 갈아입고 목을 가다듬는가 하면 동작을 맞춰보는 등 퇴근이 늦어 지각이라는 동료 배우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기다리던 배우가 등장하고 시연회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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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호수를 찾아서’ 시연회



케이블카 공사 문제로 

인간들 갈등이 달호수까지 번져…

환경 파괴와 인간의 욕심 다룬 이야기



‘달호수를 찾아서’는 지금은 늪이지만 오래전엔 달이 내려와 온몸을 담갔다는 전설이 있는 맑은 호수에 관한 이야기다. 호수에 비친 달빛이 보석 조각으로 바뀌어 호숫가는 반짝반짝 빛을 냈다고 전한다. 

어린 붉은 여우는 달호수 그 자체이자 자연이기도 한 은빛 여우 수호신에게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 엄하지만 다정한 여우 할머니는 달호수 전설과 함께 자신이 만난 한 인간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아이는 집으로 되돌아갈 때 길을 밝혀줄 단 하나의 달빛 조각만을 가져갔단다. 동화 같은 이야기에 어린 여우는 자신에게도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생기길 꿈꾼다. 

그러나 케이블카 공사 문제로 인간들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그 갈등이 이내 달호수까지 번진다. 그렇다. ‘달호수를 찾아서’는 환경 파괴와 인간의 욕심을 다룬 이야기다.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운 공존 가능할까?


극단 예도는 그동안 ‘선녀씨 이야기’(2012년 전국연극제 대상)로 해체된 가족의 이야기를, ‘나르는 원더우먼’(2018년 대한민국연극제 금상)으로 노동자의 이야기를, ‘꽃을 피게 하는 것은’(2019년 대한민국연극제 대상)으로 교육 문제를 다루며 가족과 사회의 이야기를 시의성 있게 다뤘다. 가장 작은 사회 단위인 가족 문제에 대한 연장선에서 ‘언니와 나’, ‘크라켄을 만난다면’을 창작했다. 

이렇듯 인간 중심 서사를 다루던 극단 예도가 환경 문제에 관심을 돌린 건 다름 아닌 ‘아이들’ 때문이었다. 이삼우 상임연출은 자녀들과 태평양의 플라스틱 섬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은 무엇일까’ 하는 물음에 고민을 했단다.

“환경 이야기의 종점인 인간의 욕심 그리고 자연을 그렸습니다. 상당히 매력적이고 아름답고 슬픈 우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달호수’는 그런 곳입니다. 인간과 자연과 미래가 공존하는 곳.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지구, 세상, 우주. 그런 곳은 있을까요? 아님 찾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인간과 자연과 미래가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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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호수를 찾아서’ 공연 장면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예산과 에너지를 아끼지 말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이삼우 상임연출



전문가 투입으로 완성도 높은 무대 제작


극중 동물 역을 맡은 배우들의 의상이 눈에 띈다. 뉴트리아 ‘리아’의 옷엔 질감이 무거운 털이 쓰였고 꽃사슴 ‘백이’의 옷엔 하얀 점이 알알이 박혔다. 한눈에 봐도 무슨 동물인지 직관적으로 유추된다. 움직임도 역할마다 조금씩 다르다. 도도새 ‘도도’는 팔을 거의 몸에 붙이고 다리로만 움직여 종종걸음이 어색하고 뉴트리아 ‘리아’의 앞발질엔 손, 팔과 어깨까지 상체 근육이 함께 움직인다. 

“손진숙 의상디자이너, 고재경 마임이스트의 작품입니다. 무대디자인에 심봉기 작가님도 있고요. 평소에 함께 작업하시는 분들입니다. 김동욱 음악감독님은 이번에 처음 같이 작업을 하셨죠. 지역의 작품을 제작하다 보면 결국은 제작비라는 가장 큰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적은 출연진, 간소화된 무대, 전문적인 제작진의 부재는 수준 낮은 작품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예산과 에너지를 아끼지 말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극 초반의 몽환적인 기타 선율이 점점 비극적으로 고조된다. 극의 절정 부분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갈등이 과연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까. 



1년 사업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게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의 장점 

올해는 단원 역량강화를 중심으로 진행 


공연장상주단체 지원은 지속가능한 창작활동에 도움


1989년 창단한 극단 예도는 1994년 제12회 경상남도 연극제 연기대상 수상을 시작으로 2007년 제25회 경남연극제 작품대상, 2012년 제30회 전국연극제 대상·연출상·희곡상·최우수연기상·연기상, 2019년 제37회 대한민국연극제 대상·연출상·희곡상 등 수차례 굵직한 수상 트로피를 거머쥔 전문예술단체다. 이가운데 다수의 수상은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 기간에 받은 것이다. 

“극단 예도는 2012년부터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에 참여한 단체입니다. 이 사업의 가장 큰 장점은 1년 사업을 미리 준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지난해에 이미 올해 올릴 환경 이야기를 준비할 수 있고 그런 긴 준비 기간과 안전한 예산 편성은 좋은 작품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기획 분야에서도 전문 기획자를 채용해서 극단의 지속가능한 창작활동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상주단체 기간에 대한민국연극제 대상(대통령상) 2회, 금상 1회. 경남연극제 대상 3회 그리고 많은 개인상을 수상했으며 ‘선녀씨 이야기’ 같은 경우 2013년과 2017년 서울에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극단 예도는 올해 지원사업을 통해 단원들의 역량강화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거제문화예술회관 심봉석 무대감독을 강사로 초빙해 ‘극중 인물의 목적’ 워크숍을 진행했으며 밀양문화재단 이상현 공연축제팀장을 초빙해 ‘예술마케팅’에 대한 전문가 컨설팅 정보를 공유했다. 단원들은 자체적으로 소모임을 만들어 일상의 언어를 극 언어로 번역해 철학적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 결과물은 희곡 만들기 워크숍으로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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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호수를 찾아서’ 공연 장면



극단 예도의 힘은 ‘우리’의 이야기


극단 예도는 올해만 해도 수없는 무대에 섰다. 3월 경남연극제에 ‘크라켄을 만난다면’으로 참가, 4월에는 거제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 첫 번째 레퍼토리 공연을 올렸으며 5월에는 경남선거관리위원회의 요청으로 인권연극 ‘역사의 선물’을 마산문화예술센터 시민극장에서 올렸다. 6월에 올린 공연장상주단체 육성지원사업 두 번째 레퍼토리 공연 쥬크박스뮤지컬 ‘무영리합창단의 빙고!!!’는 극단 예도의 100번째 공연이었다. 

단원 50여 명 가운데 대다수가 직장인으로 구성된 단체임에도 왕성한 활동력이 돋보인다. 

“1989년 가을 어느 날 최태황 외 연극을 사랑하는 예인(藝人) 6명이 모여 순수연극을 제작하고, 이 섬에 뿌리 내리겠다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예술의 섬’이라는 뜻을 가진 연극단 ‘예도(藝島)’를 창단했습니다. 당시에는 누가 뭐래도 연극동아리였습니다. 단원 대부분이 직장인들로 구성된, 문화예술과는 거리가 먼 조선의 도시 거제에서 30년이라는 세월 속에 극단 예도가 자라고 성장해 조금씩 세상의 관심을 받기 시작합니다. 상을 위해 연극을 한 것은 아니지만 상이 그 단체의 수준을 평가하는 사회적 통념에서 창단 초창기 십여 년간 이루지 못했던 결과들을 조금씩 만들어 냈습니다. 문화예술의 불모지라고 불리는 조선의 도시 거제도에서 태어나 서른 살이 넘은 ‘예도’가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진행 중인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힘이 극단 예도를 이렇게 성장시킬 수 있었나 하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아마도 극단의 성장은 거제문화예술회관의 건립과 결을 같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제문화예술회관이라는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을 운영하기 위한 전문 ‘인력’이 거제로 향했습니다. 이 공간이 작업의 터전이 되고 그 터전 위에 기존의 단원들과 외부에서 들어온 전문 인력들이 온갖 창의적인 상상과 행동으로 예도만의 연극이라는 조금 낯설고 생생한 날것의 세계관을 만들었습니다. 내적인 힘은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많은 시간을 함께해 왔고 그 시간 속에서 가족으로 살아 왔습니다. 그것, 시간과 관계는 신기하게도 공연 안에 녹아나고 관객들이 보게 됩니다. 관객의 시선으로 보이는 우리의 이야기가 감동이 되고 위안이 되고 질문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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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호수를 찾아서’ 공연 후 무대인사



공연 관람 습관 형성을 통한 고객층 확보


극단 예도는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꾼다. 지난 10월 서울 아트원씨어터에서 ‘선녀씨 이야기’를 올렸을 때다. 당시 모객을 위한 마케팅을 진행하던 중 서울에서 활동하는 기획자들에게서 “서울에도 이제 관객이 많이 줄었다. 연극뿐 아니라 뮤지컬 시장도 많이 축소돼 모두가 고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이유를 짚어보니 스마트폰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콘텐츠, 불편한 객석,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문화생활의 변화, 재미없는 콘텐츠 등을 꼽을 수 있었다고. 

“고민을 해 봤습니다. 문화가 달라지고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데 지역에서 연극하는 우리는 뭘 해야 할까? 결론은 관객 개발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공연을 보는 문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학생단체 관람이 가끔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교육 시스템의 변화로 방과 후 학생들의 활동에 제약이 많아지면서 단체관람이라는 문화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동안은 학생들의 공연관람 적극성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왔죠. 그래서 예전에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학교, 제 모교, 단원들의 직장 등 인맥을 동원해 이번 공연 일정에 조금 변화를 줬습니다. 거제고등학교 3학년과 해성중학교 3학년 단체공연을 특별공연으로 올라는 것이죠.”

문화예술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려는 목적 그 자체가 되기도 하지만 아주 사소하게는, 정해진 공연 시간, 관람 매너 등 행위도 구성원 간 존중하며 공존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익히는 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