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토크 [이달의 인물] 민화에서 발견한 한국의 아름다움 민화작가 혜경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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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64 / 24-10-28 글 김달님 / 사진 백동민본문
지난 9월 카자흐스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의 정물화, 책거리’라는 주제의 민화 전시회가 열렸다. 한국을 대표하는 민화 작품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현지의 관람객들에게 K아트(art)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했다. 그중 전시 홍보 포스터에 대표 이미지로 소개된 작품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혜경우드 작가의 ‘colors of literature’다. 작품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해 사천에 있는 그의 작업실로 찾아가봤다.
한국에도 이런
그림이 있다니!
혜경우드 작가는 1994년 결혼과 함께 남편을 따라 미국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여러 장르의 미술을 취미로 접한 그는 2003년 잠시 들른 한국에서 우연히 눈길을 뺏는 그림 하나를 보게 되었다. 화려한 색채를 띤 모란 그림을 보며 한국의 그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제가 그림을 본 장소가 민화 체험 행사였던 것 같아요. 현장에 계신 분에게 이 그림은 어느 나라 거냐고 물었더니 당연하다는 듯 한국의 그림, 민화라고 대답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동안 저에게 한국화는 양반이 그린 산수화나, 수묵화처럼 색채가 거의 없는 우아한 그림이었거든요. 한국에도 이렇게 화려한 그림이 있다니···.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저에겐 민화의 발견이 한국의 미를 재발견하는 일이었어요.”
짧은 기간의 한국생활을 마치고 돌아간 그는 틈틈이 민화를 접하며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민화를 배우고 싶다는 바람을 키웠고, 그 바람은 2019년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사천에 정착하면서 이루어졌다. 사천과 김해, 부산, 서울을 오가며 민화를 배운 그는 스승의 칭찬에 힘입어 2020년부터 공모전에 출품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그중 19세기 화가 이형록의 ‘책가도’와 신선 세계를 통해 장수를 기원하는 ‘요지연도’를 그린 작품은 수상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민화를 알면 알수록 매력이 참 많아요. 제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점은 민화에 담긴 ‘이야기’예요. 이형록 화가의 ‘책가도’*에는 당시 학문과 책을 중요시한 조선 후기의 분위기가 잘 담겨있어요. 이렇게 책을 주제로 그린 그림은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하거든요. 책과 함께 꽃과 여러 기물이 그려진 이유를 읽어내는 것도 재미있죠. 그리고 민화는 원근감이 뚜렷하지 않고 작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조해서 그려내요. 그를 통해 작가 개인의 취향이나 당시 서민들의 염원을 드러내는 것도 민화의 매력이에요.”
*책장과 서책을 중심으로 하여 각종 문방구와 골동품, 화훼, 기물 등을 그린 그림. 18세기 후반 정조 재위 때에 궁중회화로 유행하여 19세기 이후 민화로 확산되었다.
민화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혜경우드 작가는 자신의 개성을 담은 민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포스터에 사용된 ‘colors of literature’도 그중 하나다.
*알마티 주 대한민국 총영사관과 카자흐스탄 문화정보부, 한국민화학교(TSOM)가 공동 주최한 전시.
“조선시대 양반들의 최애 품목인 책과 그와 함께 놓인 아름다운 꽃과 꽃병을 그렸어요. 다양한 책의 색깔은 책에 담긴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표현한 색깔인데요.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린 건 꽃과 꽃병이에요. 조선시대의 그림은 대부분 남성 중심이고 책 또한 남성들의 소유였어요. 저는 여성들에게도 모두 다른 자기 이야기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 이야기를 다른 모양과 색깔의 꽃병과 꽃으로 표현했어요. 배경 색깔은 전통 민화에서는 잘 쓰지 않지만 제가 좋아하는 하늘색으로 썼어요. 카자흐스탄의 국기 색이기도 하고요.”
혜경우드 작가는 전시 기간 카자흐스탄에 방문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관람객과 교류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곳에서 그는 K팝뿐만 아니라 K아트에 대한 외국인들의 높은 관심을 느낄 수 있었고 그 경험이 영광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 민화의 아름다움을 해외 곳곳에 알리는 것이 그의 꿈이기 때문이다.
“하반기에는 서울과 김해, 제주에서 전시가 열리고 내년 초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전시가 있을 예정이에요. 지금처럼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 민화를 알리고 싶고 미국으로 돌아가면 그곳의 한국 아이들에게 민화를 가르치고 싶어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요. 무엇보다 제가 사랑하는 민화를 오랫동안 그리며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