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7 발행월 : 202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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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토크 [이달의 인물] <2024년 경상남도 문화상 수상자 인터뷰> 박용덕 사진작가_조형예술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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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65 / 24-11-19 글 김달님 / 사진 백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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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 쉬는 마산 사진의 역사 

> 박용덕 경상남도사진초대작가회 회장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


휴대전화만 있으면 누구나 사진을 찍는 시대. 빠르게 셔터를 눌러 여러 장의 사진을 찍는 것도, 사진을 저장하고 삭제하는 것도, 원하는 대로 보정하는 것도 간편한 요즘엔 한 컷의 소중함을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40여 년 경력 박용덕 회장에게 사진은 여전히 ‘한 컷의 예술’이다. 인생에서 만나는 단 한 번의 순간을 위해 셔터를 누르는 사람. 마산 사진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기록하는 사람. 박용덕 경상남도사진초대작가회 회장을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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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컷의 예술,

사진에 빠지다 

박용덕 회장은 사진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다. 20대 시절 그는 태권도 선수로 활동하며 전국체전에 출전해 경남에서 유일하게 메달을 목에 걸었다. 체육인으로 살던 그의 삶에 사진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당시 그는 몸이 아닌 마음을 채우는 일을 찾고 있었고, 운이 좋게 부산 경성대 사진학과 교수를 멘토로 만나게 됐다. 때는 1980년대, 경남 지역 대학에 사진학과 하나 없던 시절이었다. 운동을 하던 손으로 처음 잡은 카메라였지만 그는 곧바로 사진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당시는 필름 시대였기 때문에 사진 하나를 찍으려면 지금보다 더 많이 뛰고, 더 많이 기다려야 했죠. 몇 시간을 기다려서 원하는 한 컷을 얻어내면 그 희열이 아주 컸습니다.”


그에게 타고난 재능이 있었던 걸까. 사진을 시작한 지 오래지 않아 박용덕 회장은 스승에게서 사진을 찍는 감각이 좋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1989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제12회 경남미술대전에 ‘어머니’라는 화제로 출품한 사진이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죠. 사진, 미술, 공예를 통합한 분야에서 사진이 대상을 받은 건 경남미술대전 개최 이래 제가 최초였거든요.”


‘어머니’라는 작품은 여전히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모시 적삼을 입고 부뚜막 앞에 앉아있는 한 할머니의 모습. 이마에 깊은 주름이 진 할머니의 얼굴에서 긴 세월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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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 동네 골목을 걷다가 이 할머니를 발견한 거죠. 군대 휴가를 받은 아들을 한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거예요. 주름진 얼굴과 손마디에 남은 고생의 흔적, 아들을 기다리는 눈빛에서 순수한 어머니의 마음을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1992년 대한민국사진대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바라밀다’도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대만의 한 절에서 기도를 드리는 스님의 모습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촬영한 ‘바라밀다’는 박용덕 회장이 대만을 여덟 번 방문한 끝에 얻어낸 수작이다. 어둠 속 형형하게 빛나는 스님의 얼굴에서 어떤 번뇌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이 느껴진다. 그에게 인물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을 묻자 ‘마음을 찍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장의 사진에서 인물의 마음이 읽힐 때 그 사진은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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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의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하다 

최근 박용덕 회장은 제63회 경남도문화상 조형예술 부문을 수상했다. 경남도문화상은 경남 문화의 위상 제고와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한 도민에게 수여하는 것으로, 그는 사진예술 인구 저변을 확대하고 <마산 사진사(50년)>를 발간해 마산 사진 역사를 총정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1986년 한국사진작가협회 마산지부장을 맡으면서 마산에서 무료로 포토아카데미를 열었습니다. 강좌를 개설하고 공모전 출품을 지원한 덕분에 경남에도 사진작가협회 회원이 꾸준히 늘었고 마산을 근거지로 창원지부, 진해지부 등도 생겨날 수 있었죠.” 


또한 박용덕 회장은 살아있는 마산 사진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마산에서 활동한 사진가들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마산 사진사’를 책으로 정리했습니다. 이제 이 책만 펼치면 마산 사진사 50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됐죠. 1999년엔 마산 개항 100주년을 기념하여 당시 마산시와 함께 <사진으로 보는 마산 100년사>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마산의 역사가 담긴 기록물이 되었죠.”


박용덕 회장이 처음 카메라를 손에 쥔 후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있다. 요즘 그의 카메라가 향하는 곳은 사라지는 것들이다. 초가집 담벼락에 피는 꽃들, 한국의 굴뚝, 한국의 무형유산, 나아가 베트남의 소수민족 문화까지. 박용덕 회장은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요즘은 휴대폰 카메라로도 엄청난 작품을 만드는 시대이기 때문에 후배 사진가들의 사진 기술은 아주 뛰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우리 사진가들이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사진을 찍는 데 더 몰두하면 좋겠습니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도 작가들의 작품 활동 경비를 지원해 주시는 것도 좋지만, 우리 경남에서 잊혀가는 것들을 사진으로 발굴해 내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