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트렌드 [방구석 비엔날레]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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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65 / 24-11-19 정리 서영무 / 사진 제공본문
지난 11월 10일, 김종영·문신·박종배 등 세계적인 조각가를 배출한 경남 창원의 예술적 자산을 느낄 수 있는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큰 사과가 소리없이>라는 주제로 16개국 86명(63팀)의 국내외 작가, 협업자와 함께 동시대 조각의 수평성, 여성과 노동, 도시의 역사와 변화, 공동체의 움직임 등을 다각도로 다루었다. 창원을 기반으로 하는 다수의 커미션 신작 등 총 177점을 선보이며, 총 45일간 8만 명(10월 말 기준)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이번 비엔날레는 창원의 도시 공간을 하나의 ‘조각적 풍경’으로 바라봤다. 특히 올해는 창원국가산업단지 지정 50주년을 맞이하며 도시의 과거와 미래가 주목받는 해이다. 이에 우리나라 제조업 기틀을 잡아온 지역의 역사를 새롭게 성찰하게 하는 공간 4곳(성산아트홀, 성산패총, 동남운동장, 문신미술관)을 전시 장소로 선정했다. 도시의 풍경과 어우러진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색다른 예술 경험을 선사하며, 도시의 시간성과 조각의 개념을 함께 재고하는 기회가 됐다.
창원을 예술로 물들였던 특별한 시간,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를 미처 관람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이 자리를 빌려 현장을 빛낸 대표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작가의 독창적인 시각과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살펴보며 여러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이마즈 케이, 〈사테네의 문〉 전경, 2024
이마즈 케이, 〈사테네의 문〉 전경, 2024
이마즈 케이, 〈사테네의 문〉
인도네시아 반둥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이마즈 케이는 데이터에 기반하여 이미지를 왜곡하고 재건축하며 이미지의 형태 이면을 탐구한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인도네시아 스람 섬의 하이누웰레 농경신화에서 비롯한 허구적 풍경을 재현한다. ‘야자나무 가지'라는 뜻을 가진 이름의 소녀, ‘하이누웰레’는 배설을 하면 진주, 사기와 같은 보물이 나오는 신기한 재주를 가진 존재였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마을 잔치가 열렸으며 아흐레째 되던 날 소녀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것이 최초의 죽음이자 살인이었다. 소녀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 지하계의 여신 사테네는 거대한 고문의 문을 만들어 살인에 가담했던 자들이 그 문을 통과하며 벌을 받게 했다. 소녀의 아버지는 조각난 딸의 시신을 마을 곳곳에 묻었으며 그로부터 구근식물과 덩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작품은 삶과 죽음, 환생을 연결 지으며 폭력과 상실, 변이와 순환에 대한 사유를 요청한다.
트랜스필드 스튜디오, 〈해발, 중심〉, 2024
트랜스필드 스튜디오, 〈해발, 중심〉
작가 야마카와 리쿠와 프로듀서 다케다 유코로 이루어진 트랜스필드 스튜디오는 ‘여기 모인 우리는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여럿이 함께 이동하는 투어 퍼포먼스와 그 단서가 되는 지도, 오디오 가이드를 매개로 작업한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지에서 현지 조사와 연구를 지속해 온 트랜스필드 스튜디오는 지형학적으로 땅의 시작과 끝이 해발 0m에 준하는 섬과 반도의 특성을 닮은 도시에서 〈해발〉 연작을 전개한다. 이들은 〈해발, 분열〉(2024, 타이베이), 〈해발, 흐름〉(2024, 서울)에 이어 〈해발, 중심〉(2024, 창원)에서 창원과 진해의 지리를 도로 교통의 요지인 로터리를 빌려 설명한다. 관객은 각자의 디바이스를 통해 오디오 가이드에 접속하여 정지된 시간을 품고 있는 성산패총에서 도시의 경계에 관한 내러티브를 청취하며 먼 과거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유성, 〈천사〉, 2024
이유성, 〈천사〉, 2024
이유성은 신체와 그를 둘러싼 공간의 본질에 질문하며 물리적 조각의 형질로 시간의 더께에 묻힌 틈 사이를 파헤치고 빈 공간을 조형한다. 그는 폐허에 가까운 운동장에 ‘이완’된 전신 혹은 신체의 일부를 캐스팅한 조각 위로 드로잉이나 낙서를 한 인체상을 놓는다. 익숙한 기호와 흔한 물성이 신체에 녹아든 닫힌 순간이 아닌, 느슨해져서 늘어져 버린 텅 빈 기호를 통해 작품은 주변의 풍경을 흡수하기도 관통하기도 한다. 건설 중인 혹은 건설된 알루미늄으로 직조한 〈천사〉는 이 지구상에서 ‘천사’의 형상을 상상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묻는다.
심정수, 〈서해안(알)〉, 1985
심정수, 〈서해안(알)〉
심정수는 인공물과 자연물을 넘나들며,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재고한다. 서해안 갯벌과 관련한 연작 중 하나로 〈서해안(알)〉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인간의 시점에서 갯벌은 어둡고 위험한 땅이지만, 다른 생명체의 관점에서 갯벌은 생태의 장이다. 심정수는 물고기의 삶의 조건이자 환경이 인간에게 자연재해 혹은 개발해야 할 자원으로 축소된 지점에 주목하여 서해안에서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크리스 로, 〈반복되는, 예언적인, 잠들지 않는 졸린 도시의 루시드 드림〉, 2024
크리스 로, 〈반복되는, 예언적인, 잠들지 않는 졸린 도시의 루시드 드림〉
건축을 전공한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미술가인 크리스 로는 이번 작업에서 ‘졸린 도시’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그가 생각하는 ‘졸린 도시’는 대도시와는 정반대의 스펙트럼에 존재하는 도시에 대한 애정 어린 표현이다. 계획도시 창원과 그의 오랜 조형적 실천의 관계에서 파생된 이 작업은 공간끼리의 침묵, 고요함과 시끄러움의 사이, 긴장과 역동성의 관계를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