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공감 [경남클라쓰] 한반도 현존하는 최고(最古) 도서관 -해인사 장경판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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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59 / 24-05-29 글 서영무 / 사진 해인사 제공본문

15세기 지어졌으며 현재 500여 년이 넘도록 본래의 역할과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건축물이 경남에 있다. 13세기에 제작된 팔만대장경 목판을 보존하기 위해 지어진 해인사 장경판전이 그 건축물이다. 겉으로 보면 우리나라 전통 목조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단청이나 장식이 없어 무척 단순하고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오랜 세월 아무런 훼손 없이 팔만대장경 목판을 보존해 온 신비한 과학적 비밀이 숨어있다.

#비밀(1) 온도를 유지하다
적정한 온도를 고려한 위치와 방향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산에 있는 장경판전은 수다라장, 법보전, 동사간판전, 서사간판전 이렇게 네 채의 건물이 네모 형태로 해인사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655m 부근)에 서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태양의 고도와 일조량을 계산하여 설계되어 사계절 내내 햇빛이 장경판전 내로 비친다. 따라서 여름에는 직사광선을 피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볕이 들어 적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비밀(2) 숨을 쉬다
원활한 통풍과 환기를 고려한 구조
장경판전 각 건물의 남쪽 창은 위가 작고 아래가 크며, 북쪽 창은 아래가 작고 위가 크다. 주변 지형이 북쪽이 높고 막혀 있으며, 남쪽 아래로는 열려 있는 장경판전은 남쪽 아래에서 북쪽으로 바람이 분다. 따라서 남쪽 아래 큰 창으로 들어온 바람이 내부를 전체적으로 순환하고 북쪽 위 큰 창으로 빠져나가 자연스레 통풍과 환기가 되는 것이다.

#비밀(3) 습도를 조절하다
적정한 습도를 조절하는 바닥
장경판전의 바닥은 횟가루, 숯, 소금, 황토를 겹겹이 다져 놓은 구조이다. 이는 습한 여름에는 습기를 빨아들였다가 건조한 겨울엔 습기를 내보내 자연적으로 습도를 조절한다.
#보존과학의 결정체
이렇게 장경판전은 적정한 온도와 습도, 원활한 통풍과 환기 등 팔만대장경 목판을 보존하기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한 매우 과학적이고, 주도면밀하게 설계된 건물이다. 이는 현대 건축 기술로도 따라 하기 어렵다고 평가된다. 덕분에 완성된 지 750여 년이 지난 팔만대장경 목판을 500여 년 동안이나 뒤틀림, 곰팡이, 해충의 번식등으로 인한 훼손이 거의 없이 완벽하게 잘 보존하고 있다. 또한, 창건 당시의 건물 원형과 기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경이로움을 갖게 한다.

#세계가 인정한 아름다운 고대 도서관
경남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은 1995년 12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건축사와 예술사 교수인 제임스 캠벨이 지은 책 ‘세계의 도서관’에서는 "장경판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문화유산이며, 세계적으로 훼손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고대 도서관 중 하나로 손꼽힌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2017년 프랑스 일간지 피가로의 부동산특별판 ‘르 피가로 이모빌리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10곳을 선정했다. 10곳 중 경남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이 7번째로 소개됐다. 이렇게 전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유산이 경남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꾸밈이 없는 장경판전은 품고 있는 역사나, 아름다운 건축물로나 ‘보고(寶庫)’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