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공감 [경남 클라쓰] 유네스코 세계유산 남계서원을 아시나요? - 함양 남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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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62 / 24-08-27 정리 김봉임 / 사진 제공본문
아는 만큼 실천하라! 조선시대 동방오현의 한 사람인 일두 정여창은 도덕적 실천주의자다. 앎을 실천으로 행하였다. 경남 함양의 남계서원은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경북 영주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건립되었다. 무엇보다 지역 사림에 의해 최초로 설립된 서원으로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다. 남계서원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손되지 않고 남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며, 경상남도에서는 유일한 존속 서원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9개 서원
한국의 서원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조선시대 지방 지식인들에 의해 건립된 대표적 사립 성리학 교육기관이다. 지난 2019년 7월, 한국의 670여 개 서원 가운데 9개 서원이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소수서원(영주), 옥산서원(경주), 도산서원(안동), 필암서원(장성), 도동서원(달성), 병산서원(안동), 무성서원(정읍), 돈암서원(논산), 그리고 함양의 남계서원이다.
우리나라 두 번째 건립
남계서원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위치한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에 강익을 비롯한 지역의 유학자들이 일두 정여창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성리학 교육시설이다. 1566년(명종 21)에 왕이 ‘남계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다. 남계는 서원 앞을 흐르는 하천 이름이다. 남계서원은 영주 소수서원에 이어 조선시대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으로 역사가 깊다.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어 나촌으로 옮겨지었다가 1612년(선조 43) 옛터인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겨 세웠다. 남계서원은 전통 한옥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서원 중 하나이다. 주요 건물로는 강당, 사당, 동재, 서재 등이 있다. 강당은 남계서원의 중심 건물로 학생들이 모여 강의를 듣는 장소이다. 사당은 정여창을 비롯한 여러 유학자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으로 높은 계단을 올라 자리한다.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이 생활하고 공부하는 공간으로 각각 동쪽과 서쪽에 있다.
자신을 한 마리 좀벌레에 비유한
일두 정여창
일두 정여창은 1450년 정육을의 아들로 태어났다. 18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점필재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한다. 22세에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나 벼슬을 여러 차례 사양하고 학문에 전념한다. 정여창은 수많은 천거에도 불구하고 공직에 나아가지 않았지만 1490년(성종 21)에 과거에 급제해 현재 함양 지역인 안음에서 현감 등을 지낸다. 연산군 등극 이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인이라는 이유로 유배된다. 유배지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다가 54세를 일기로 1504년 세상을 떠난다. 정여창의 호 일두는 ‘한 마리의 좀벌레’라는 뜻이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이는 중국 북송 시대의 도학자 이천 정이 선생의 “다른 사람에게 은덕을 주지 못하고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는 사람이라면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한 마리의 좀벌레 같은 존재가 아니겠느냐”는 말씀을 새기며 지은 호이다.
좌안동 우함양
뼈대 있는 고장 경남
예부터 ‘좌안동 우함양’이라고 하여 낙동강 왼쪽인 안동과 오른쪽인 함양은 훌륭한 인물이 배출되어 학문과 문벌에서 손꼽히던 고을이다. 안동의 대표적인 인물이 퇴계 이황이라면 함양에는 일두 정여창이 있다. 지리산 북쪽 자락과 덕유산 사이에 위치한 함양은 거연정, 덕천서원, 정여창 고택 등에서 볼 수 있듯 양반 문화가 발전한 지역으로 경북 안동 못지않은 뼈대 있는고장이다.
이미지 제공 (남계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