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 [인문학 경남여행] 단순한 공예를 넘어 시대의 문화와 역사를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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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69 / 25-04-23 글 김봉임 사진 백동민본문
한국의 전통 공예는 오랜 세월 동안 계승되며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그중에서도 통영 12공방은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장인 정신의 결정체다. 단순한 공예를 넘어 한 시대의 문화와 역사를 담고 있다. 과거 통제영에서 태동한 공예 기술들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되며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거듭나고 있다. 통영의 장인들은 전통 기술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디자인과 소재를 접목해 세계 시장을 향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통영 공예는 조선의 명품으로 손꼽히는데, 19세기 파리에 에르메스가 있었다면 그보다 앞선 18세기 통영에는 삼도수군통제영 12공방이 있었다. 통영 12공방의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통영 12공방, 조선의 명품 공예를 잇다
통영은 조선 시대부터 전통 공예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쳐왔다. 조선 시대 통제영 내에는 군사용 함선과 무기뿐만 아니라 생활용품, 왕실에 바치는 진상품을 제작하는 다양한 공방이 존재했다. 통영 12공방은 조선 시대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 내에 설치된 공예 공방으로, 국가와 왕실에 필요한 각종 공예품을 제작하던 곳이다. ‘12공방’이라는 이름은 12개의 전문 공방이 운영되었기 때문이며, 이곳에서는 나전칠기, 소목, 자개장, 갓, 소반, 악기 등 다양한 공예품이 만들어졌다. 이들 공방은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조선 왕실과 군영에 필요한 필수 물품을 제작하는 국가적 산업이었다. 특히 통영의 나전칠기, 목가구, 갓과 같은 제품들은 그 예술성과 정교함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통제영과 통영의 역사
조선 수군의 전초 기지이자 이충무공의 숨결이 살아있는 통제영(統制營)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약칭으로 삼도수군통제사가 충청, 전라, 경상 삼도의 수군을 지휘하던 본영을 말한다. 최초의 통제영은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이순신 장군의 한산 진영이었다. 삼도수군통제영은 1604년에 설치되어 1895년 폐영될 때까지 292년간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 수군을 지휘하던 본영(현재 해군본부)을 말한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었으며, 현 통영에 위치한 삼도수군통제영은 6대 이경준 통제사 때 설영된 장소이다. 통제영의 중심 건물로는 조선 시대 가장 큰 목조건축물 중 하나인 세병관(국보)이 있으며, 지방 공방 중에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통영 12공방 등이 있다.
통영 12공방의 대표적인 공예
한국 전통 공예의 정수 나전칠기(螺鈿漆器) | 나전칠기는 조개껍데기의 빛나는 자개를 이용해 장식하는 공예 기법이다. 통영은 조선 시대부터 최고의 나전칠기 장인들이 활동하던 지역이며,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통영 나전칠기는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세밀한 문양으로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정교한 목공예의 미학 소목(小木) | 소목은 전통 가구 제작 기술로, 주로 나무를 정교하게 조립하여 장이나 농 등의 가구를 만든다. 통영 소목 공예는 견고한 짜맞춤 기법과 섬세한 장식이 특징이며, 현대 가구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선의 멋을 잇는 갓 | 조선 시대 신분을 상징하던 갓을 만드는 공방도 운영되었다. 특히 통영의 갓은 가볍고 정교하며, 선비들의 품격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현대에는 전통 의상과 함께 갓이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패션 아이템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실용과 예술의 만남 소반 | 소반은 전통적인 개별 식탁으로, 한국 가옥의 생활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통영 소반은 특히 세밀한 조각과 디자인이 돋보이며, 현대에도 인테리어 소품으로 인기가 많다. 통영은 한땀 한땀 손으로 누벼 만든 ‘통영 누비’로도 유명하다. 과거 왕실과 상류층의 옷을 제작하는 기술에서 시작되어, 오늘날에는 패션과 소품 제작에도 활용되고 있다.
통영 12공방, 현재를 넘어 미래로 간다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이후 많은 전통 공방이 쇠퇴했지만, 통영 12공방의 명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통영옻칠미술관, 통영공예문화관 등에서 나전칠기를 비롯한 다양한 전통 공예품을 직접 볼 수 있으며, 현대적 감각을 더한 공예품도 제작되고 있다. 특히, 2017년 개장한 통영12공방전통공예품전시판매장에서는 나전칠기, 소목, 부채, 누비 등 20개 업체가 300여 점의 공예품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2층에는 국가중요무형유산 장인들이 만든 작품들이 전시되어, 전통 공예의 깊이를 체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