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알려드리는 소식지 웹진 Vol. 32

5월과 기억, 김주열 열사 추모의 벽에 다녀와서

경남문화기자단 김주영


 창원시 마산합포구에는 사람들에게 아직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김주열 열사 추모의 벽’이 있다. 인터넷 지도 서비스를 통해 그곳을 찾아가면 그 위치에는 오수처리장이 있고, 현재 공사 중이라서 문이 폐쇄되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근처의 길을 돌다보니 약간의 폐수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는데 그것이 오수장 때문인지 단지 쓰레기를 아직 수거해 가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생활의 문제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실제 위치는 왼쪽 골목길로 가서 쇠만 걸어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된다. 안내판이 주변에 많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아마 이곳을 알 수 없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곳은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로 최루탄이 눈과 머리를 관통한 아픈 얼굴의 모습이 부조처럼 동그란 쇠에다 새겨져 있다. 3.15의거 이후 김주열의 주검이 떠오른 이곳은 제2차 마산 항쟁을 일으키게 했고, 동시에 전국적 혁명의 발원지가 되었다.



 추모의 벽에는 은행원이 되기 위해 남원에서 마산으로 상고 입학시험을 보러 왔던 김주열을 위한 노래 ‘남원 땅에 잠들었네’의 악보가 붙어 있다. 그 좌우로는 자유의 아버지로서 그의 청년성을 기리고, 감사를 바치는 시가 하나씩 쓰여 있었다.  다시 뒤돌아 들어왔던 쪽을 바라보면 문 옆에 벽화로 된 김주열의 어린 얼굴이 있다. 그는 눈이 맑았기 때문에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추모의 벽에는 동그란 버튼이 있어서 누르면 악보의 노래가 재생된다. 아주 예전에 만들어진 것처럼 보여서 고장 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작동할 거라는 기대 없이 버튼을 누르곤 나가려고 하고 있는데, 큰소리가 온 동네로 울려 퍼져서 잘못을 한 것 같았다. 어서 나가려고 하다가 귀로는 노래를 듣고, 소년의 다친 얼굴을 보고 그곳에 손을 얹었다가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노래가 거의 다 끝나고 밖으로 가려던 길에서 벽에 경찰순례길 스탬프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추모의 벽은 어버이날 오후에 찾아간 장소였다. 그날 오전에는 국립 3.15 민주묘지와 기념관을 방문했었는데 그때 이런 게 있구나 하고 공책에 기념으로 스탬프를 찍었다. 이곳이 마산의 2번째 스탬프 장소라는 것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묘지에는 얼굴은 어리고 사진은 오래된 옛날 학생들의 모습과 그들의 편지와 일기가 남아있다. 

그곳에서 검은 옷을 입은 조문객이 무덤에 앉아 꽃을 꽂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느 어린 얼굴의 가족일까 생각하며 기념관 안내인 분에게 물었더니 안내인 분은, “오늘은 어버이날이니까...” 라며, 1월 1일, 3월 14일, 15일에 많이들 오신다고 덧붙였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김주열도, 다른 학생과 시민들도, 지금은 누군가의 할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5월은 정말로 날씨가 좋고 편안한 기분이 드는 달이다. 3월과 4월은 혁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만 5월은 가정을 생각하며 평화와 안정을 기억하는 달이다. 



 “아주 어릴 때 백일장을 하러 왔었는데 여기서 총알 본 기억이 있어요.”

그러자 안내인 분은 “아 그렇습니까.” 하고 반갑게 웃었다. 



 이것은 지난달 4월에 있었던 미얀마-창원지역 대학생 연대 문화제 참가 때의 사진이다. 문화제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꽃을 들고 있는데 이 꽃은 죽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미얀마 쿠데타 희생자를 추모하며 집회에 참가한 미얀마 학생은 이곳에서 안전하게 있을 동안 모국의 가족들은 지금도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정말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이렇게 잘 지내고 있기 때문에 정말로 괜찮다고 말했던 것이, 그래서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것이라고 했던 목소리가 기억이 난다. 


 그들은 마산 3.15의거와 4.19혁명의 정신을 떠올리며 현재 미얀마의 일을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떠올릴 수 있을 것일까. 생활의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신문에서는 미얀마의 일들을 사진으로 볼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그러한 현실의 벽이 실제를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눈을 가진 인간은 현실의 벽 말고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억하지 못하게 하고 완전히 없어지게 한다. 


 그러한 허무에서 하잘 것 없는 생활에도 시는 구르고 있으며 그것을 잡기만 하면 시는 태어난다는 어느 시인의 시를 소개하며 기행문을 마친다. 기사를 쓰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에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