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알려드리는 소식지 웹진 Vol. 32

기다림이 있는 느린 여행, 하동 평사리 ‘달마중’

경남문화기자단 백수정

 무작정 떠나본 지가 언제였던가. 코로나19로 예약, 인원제한, 관광지 개방 여부 등 사전 예약과 계획이 일상이 된 지금 여행다운 여행, 자유로운 여행에 대한 갈망은 더욱 크다. 우연히 소셜미디어에서 주민공정여행사 놀루와의 ‘달마중’이라는 여행프로그램을 본 순간, 지금이 무작정 떠나야 할 기회라는 걸 직감했다. 섬진강과 달이라니... 떠나야 했다.


 

 섬진강을 동무삼아 평사리공원으로 가는 도로는 아름다웠다. 섬진강의 잔잔한 물결이 햇살에 반짝거렸다. ‘달마중’의 환영인사를 길에서 먼저 받는다. 해가 늬엇늬엇 넘어갈 때쯤 평사리공원에 도착했다. 몇 번 두리번거리자, 머지않아 달마중 간이 안내소를 발견했다. 등록과 함께 하동의 특산물인 왕의 녹차와 녹차꽃빵, 녹차곡물과자를 받고는 공원에 앉아 하동을 맛본다.


달마중 가기 전 하동의 특산물로 하동을 맛본다.

주민공정여행 놀루와의 ‘달마중’프로그램은 문워크, 문리버, 문스테이지, 문메모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 속에서 자연스러운 우리

 

 사람들이 모두 도착하자 호야등을 하나씩 들고 섬진강 강가로 내려갔다. 첫 번째 코스인 ‘문워크’는 섬진강을 거니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이드 뒤를 따라 가자, ‘지금은 자유롭게 강가를 걸어 다니시면 되세요’ 한다. 뭘 해야 할지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각자 여기 저기 흩어진다. 맨발로 모래를 걸으며 소녀처럼 촉감을 말하는 사람들, 강가에 혼자 앉아 흐르는 물을 멍하니 보는 사람, 강을 거슬러 멀리까지 올라가는 사람, 재첩을 찾겠다며 모래를 뒤적이는 사람들... 모두 제각각이지만 작게 빛나는 호야등이 그들 모두를 비추고 있다. 수달 한 마리가 빼꼼히 물 위로 머리를 내밀고는 섬진강의 여행자들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여행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연을 가만히 느끼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스러운 우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문워크. 작은 호야등 하나 들고 섬진강을 거닌다.


 ‘문리버’는 작은 종이배에 각자의 소망을 적고 작은 초를 올려 섬진강에 띄워 보내는 것이다. 강가에 둘러 앉아 작은 종이배에 무엇을 적을까 고민한다. 어른들은 학창시절 수학여행 온 듯 새삼스럽지만 재미있는 듯 뭔가를 적는다. 초에 불을 붙이고 조심스럽게 종이배를 강에 띄운다. 양말을 벗고 강에 들어가 종이배를 따라간다. 잘 떠내려가는 종이배를 보며 행복해 한다. 물 흐르듯 소망이 이루어질 것 만 같다. 


문리버. 작은 종이배에 각자의 소망을 적고 작은 초를 올려 섬진강에 띄워 보낸다.


여행이 그리워, 사람이 그리워


 강가에 내려앉은 달 주변에 하나 둘 둘러앉았다. 지역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하는 ‘문스테이지’의 시간이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하다 하동이 좋아 하동군민이 됐다는 전통무용가 박경애 선생님과 하동무용단이 달을 몸짓으로 표현했다. 하동이 고향인 국악인 김새아씨와 해금 연주자 김지희씨는 봄과 달을 노래한다. 시인 박순현은 그날 새벽에 썼다는 하동의 봄을 표현한 시를 낭송한다. 해가 넘어가는 섬진강가에 앉아 하동의 자연과 달을 공연으로 만난다. 하동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여행이 그리웠던가. 사람이 그리웠던가. 


문스테이지. 전통무용가 박경애 선생님과 하동무용단이 달을 몸짓으로 표현한다.


하동의 예술가들이 꾸미는 무대를 보고 그들의 하동 이야기를 듣는다.


 평사리에 내려앉은 달 앞에 각자의 달을 사진에 담는다. ‘문메모리’의 시간이다. 어둠이 더욱 짙게 내린 밤, 이제 평사리에는 달빛과 사람들의 실루엣만이 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실루엣으로 그들이 무엇을 기억할지 살짝 엿볼 수 있다. 누군가는 핑크빛 사랑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가족의 사랑을, 누군가는 장난을, 누군가는 우정을 기억한다. 달빛과 사람들, 사람들...


어둠이 더욱 짙게 내린 밤, 이제 평사리에는 달빛과 사람들의 그 실루엣만이 있다.


“너도 누군가의 달이다.”_놀루와 대표 조문환의 시中


 달마중은 기다림이다. 한 달에 한번 보름달이 뜨는 날에 달마중이 열린다. 달마중에는 자연의 기다림, 함께 가는 사람에 대한 기다림, 하동을 예술에 담은 사람들에 대한 기다림이 있다. 어디에 있건 매일 밤 달이 차오르는 하늘을 올려다볼 것이다.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