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반대광대,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는 의령 전통문화
경남문화기자단 김은아
의령군 부림면 남방골산 비탈길을 굽이굽이 올라갔다. 제대로 찾아온 걸까 의문도 잠시, 산 중턱 목적지에 다다르자 탁 트인 공간에 목가적인 분위기의 농가 몇 채가 나타났다. 뒤로는 울창한 숲이, 앞으로는 해질녘 황금빛 들판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이었다. “여기 경치가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인스턴트커피를 마셔도 여기서 마시면 호텔 커피 못지않답니다.” 집주인 강상복 씨가 낯선 방문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집주인의 안내에 따라 집 바로 옆에 위치한 연습실로 향했다. 부림면 주민들이 매주 화요일마다 모여 ‘신반대광대’ 연습을 하는 공간이다. 창고를 개조해 만들었지만 열댓 평 돔 형태의 연습실에 냉난방기, 싱크대, 냉장고 등 기본가전이 설치되어 있어 생활하기에 불편함 없어 보였다. 사방에 우레탄폼이 두껍게 발라져 있어 특히 눈에 띄었는데 집주인이 주민들을 위해 무료로 연습실을 대여해준 것은 물론 악기 소리가 혹여나 누군가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결과였다. 이날 주민들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다양한 모습의 배려를 접하며, 점차 사라져가는 두레문화가 신반대광대로 하나 된 부림면 주민들에게서 생생히 살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창고를 개조한 연습실 |
연습실 내부모습 |
화요일은 ‘신반대광대’가 되는 날
해가 지고 풀벌레 소리만 들려오던 조용한 이곳에 주민들이 하나둘 나타나면서 시끌벅적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농부, 회사원, 가정주부 등 의령에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매주 화요일 남방골산에서 신반대광대를 통해 하나가 된다. 매주 만나지만 그 때마다 새로운 반가움으로 서로에게 따스한 눈빛을 보내며 안부를 주고받았다.
7시 정각 연습시간이 되자 주민들과 함께 연습실로 입장했다. 연습실 앞쪽 작은 무대에 오색고깔을 쓰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서낭당각시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서낭당각시는 대광대가 신주(神主)처럼 모시는 인형으로 집에 들이면 복이 들어온다 하여, 공연 며칠 전 인형을 안고 마을의 집집마다 들러 가정의 안녕을 빌어주기도 했다. 연습실에서 늘 주민들을 지켜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서낭당각시만큼 주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존재가 또 있다. 북채를 단단히 쥐어 잡고 부드럽지만 한 순간의 흐트러짐 없이 다부지게 수업을 이끌어가는 송진호 강사다. 그는 집돌금농악 등 의령지역 문화콘텐츠를 발굴하여 전수하고, 활발한 공연활동을 펼치며 의령문화와 우리국악을 널리 알리고 발전시켜 나가는 젊은 국악인이다. 조부가 신반대광대 단원이었던 故송철수 명인으로, 그 또한 2020년 최연소 대한명인(국악 상쇠)으로 추대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 서른두 살 젊은이와 부림면 주민들이 깊고 깊은 산골마을을 매주 찾아오는 이유는 함께 힘을 합쳐 신반대광대를 완성해나가기 위해서다.
신반대광대 복원과 전수로 의령문화 세우기
신반대광대는 의령군 부림면 신반지역에서 탄생해 조선시대 서울 남사당패, 진주 솟대패와 더불어 전국 3대 유랑광대패에 속했던 뛰어난 예인집단이다. 대광대는 죽광대(竹廣大)라고도 불리며 풍물, 솟대타기, 죽방울받기, 얼른(요술), 오광대가면극으로 구성돼 있다. 합천 초계대광대와 더불어 경남 다른 지역의 탈춤과 솟대패 등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정도로 수준 높고 규모도 컸다. 풍자와 해학으로 민족정서를 표현하던 대광대는 1920년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으로 인해 점차 사라져갔다. 그러다 몇 년 전, 부림면 지역공동체의 노력으로 신반대광대의 복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신반대광대 복원과 활성화로 의령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세웠다. 고증자료가 많이 부족했지만 학자들의 연구자료, 학술세미나, 다른지역 작품들, 주민 인터뷰 등 다방면의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되, 복원할 수 없는 것은 새롭게 창조해내기도 했다. 일부 공연 의복에 대한 고증이 전무하자 의령의 특산품인 한지를 의복 재료로 활용한 것처럼 부족한 부분은 지역문화를 반영해 지역성을 살리면서 완성도를 높이고자 하였다.
주민들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의기투합하여 신광대광대 복원 노력과 밤낮없는 연습을 통해 2019년 경상남도 민속예술축제에 의령대표로 출전해 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고, 올해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문화우물사업에 공모하여 예비마을에 선정되기도 했다. 문화우물사업은 주민이 직접 주도하고 참여하여 문화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경남 고유의 문화사업이다. 예비마을에 선정된 부림면 주민들은 지원을 통해 그동안의 운영상 어려움을 딛고 신반대광대 재현 및 전승을 위한 체계적인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는 의령전통문화
문화우물사업 예비마을에 선정된 부림면 주민들은‘우리 손으로 만들어가는 의령전통문화’라는 주제로 매주 모여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송진호 강사 등 국악인들의 헌신적인 강의와 주민들의 뜨거운 열정이 만나 점차 합이 맞아지며 주민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평이다.
본 수업에 앞서 지난 시간 배웠던 수업내용을 복습하던 중 누군가 형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송진호 강사는“기본규칙은 지키되 너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노는 것이 우리 음악의 흥을 살려요. 그렇게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만 우리 단원들을 보면 처음보다 많이 자연스러워졌어요.”라고 답변했다. 기본을 지키며 즐기는 것이야말로 이 연습이 지향하는 바다. 그래서인지 이날 모인 20명 남짓 주민들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즐기면서도 강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며 한 단계 더 나아가려는 모습이었다.
본격적인 풍물교육이 시작되었다. 지신밟기 등 축원 목적으로 계승되어 온 영남지역 풍물은 가락이 빠르고 진취적이며 힘찬 가락이 특징이다. 주민들은 저마다 징과 꽹과리, 북과 장구를 잡고 앉아 경상도의 대표적 가락인 덧배기를 연주했다. 송 강사는 경상도식으로 더 빨라야 한다고 조언한다. “왜 경상도는 전라도에 비해 가락이 빠른 것일까요? 경상도는 산이 많고 전라도는 평야가 많지요?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숨이 차서 성격이 빨라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경상도 음악에도 반영되었어요.” 오랜 세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전승되어 온 우리 전통문화에 그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설명에도 인문학적 해설을 곁들여 주민들의 이해를 높이고 흥미를 북돋우는 것이 이 수업의 묘미다. 긴 시간 함께 호흡해온 이들이기에 강사의 말 한마디에 한층 속도를 높여 신명 넘치는 풍물 한 판을 거뜬히 펼쳐 보인다.
풍물 연습에 이어 오광대 연습이 시작됐다. 악사의 장단에 맞춰 단원들의 절도있는 춤사위가 원을 그리며 펼쳐지고, 각자 만들어내는 춤사위들이 조화를 이뤄가며 오광대의 한 장면이 완성되었다. 탈만 갖추면 바로 무대에 올라도 될 만큼 수준급 실력이다.
오광대 연습 사진 |
악사 |
송진호 강사는“주민들을 가르치며 좋은 점은 젊은 친구들보다 기술이 떨어질 수는 있어도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거예요. 연주를 듣다 감동 받곤 하죠.”라고 말하며 주민들에게 이 활동이 삶의 쉼표가 되어주길 바란다며 씨익 웃었다. 주민들뿐만 아니라 젊은 국악강사에게도 바쁜 음악활동에 보람과 웃음을 주는 쉼표가 되어주는 것 같았다.
신반대광대가 무형문화재가 되는 그날까지
연습이 막바지에 이르러 밤이 깊어진 시간, 부림면 박명자 농악단장이 품에 가득 간식을 안고 방문했다. 사정상 연습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주민들의 열정을 응원하고 싶다고. 정이 넘치는 장면이다. 방역지침 준수를 위해 그 자리에서 나눠 먹지는 못했지만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웃음 가득하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비결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다가 천병국 반장의 말이 떠올랐다. “신반대광대의 공연에는 문둥과장이 없어요. 왜냐면 이 남방골에 문둥병 환자들이 살고 있었거든요. 그들을 존중하기 위해 절대 그 과장만은 공연하지 못하게 했어요.”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신반대광대의 너그러운 정신이 현재에까지 이어져 주민들을 따스한 정으로 이어주고 있었다.
주민들에게 매주 모이는 이유를 물었다. 각자 참여 이유가 달랐다. 그저 흥겹고 신명나는 우리 음악이 좋아서, 의령의 전통문화를 복원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서, 신반정보고를 비롯한 지역 학생들에게 의령의 전통문화를 전수하기 위해서 등등. 공통점은 매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즐겁다는 것이다. 컴컴한 밤 산골짜기까지 와야 하는 수고로움은 아무 벽도 아니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인심을 나누며 함께 의령문화를 세워나가는 이 시간이 특별하기만 하다.
매주 모여 구슬땀을 흘리는 주민들의 목표는 오는 11월 창녕에서 열리는 ‘2021 경상남도 민속예술축제’에 출전해 대상을 타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남사당놀이패처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아 의령 전통문화의 가치를 인정받고, 보다 체계적인 활동을 통해 미래세대로 신반대광대를 온전히 계승해나가는 것이 이들의 최종 목표다. 현재 경상남도에 국가무형문화재는 15개가 지정되어 있다.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 등 익히 알려진 문화재들이 전수관을 기반으로 공연과 전수 활동을 활발히 펼치며 우리 전통문화와 지역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신반대광대 역시 지금처럼, 공동체의 화합과 노력이 계속 이어진다면 의령의 첫 번째 국가무형문화재가 되어 의령문화를 굳건히 세우고 기반을 넓혀나가 전국 3대 유랑광대패로서의 명성을 되찾을 날이 곧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