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해야 하는 것, ‘줌 아웃’해야 하는 것
언택트 시대의 문화예술교육
문학평론가 고영직
지난 6월, 어느 ‘하루’의 일상이다. 오전에 이번 학기 모 대학에서 강의하는 <세계와시민> 마지막 수업을 줌(zoom)으로 진행했다. 오후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 주최하는 제3회 아시아문학아카데미 사전 프로그램 <그들이 본 아시아: 서구의 눈에 비친 아시아> 강좌를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나는 『1984』, 『동물농장』의 작가로 잘 알려진 작가 조지 오웰이 버마에서 식민지 경찰 노릇을 하던 시절의 경험을 소설화한 『버마 시절』(1934)을 중심으로 강의를 촬영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경기도 화성시 D고등학교에서 십대 청소년들을 만나 ‘아이들도 고독이 필요하다’는 주제로 2시간 남짓 인문학 강의를 진행했다.
이날의 경험은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어쩌면 ‘예외적인’ 비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하루 내가 겪은 경험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 이전인 2019년의 상황이라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낯선 경험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날 하루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겪은 교육 경험은 펜데믹(pandemic) 상황에 이른 코로나19 시대의 (문화예술)교육 현실을 반영한다. 다시 말해 ‘비대면’ 언택트 방식의 온라인 수업은 누구도 예견하지 못한 비상상황이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삶이 돌이킬 수 없이 변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문화예술교육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기존의 관행적인 교육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교육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했다’는 식의 패러다임을 답습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느 논자가 ‘삶이 돌이킬 수 없이 변했고, 삶과 교육이 접속하는 방식 또한 달라지고 있다고(김성우, 「온라인 학습과 새로운 교육의 상상력」, 『민들레』 2020년 5/6월호, 92쪽) 한 언급은 지금 여기 교육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관점이다. 응용언어학자 김성우는 의례(ritual)가 사라진 교육, 몸의 관계가 탈각된 ‘온라인 교실’의 문제점을 성찰하며, ‘새로운 삶의 질서와 기술적 토대가 열어젖히는 새로운 교육의 가능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김성우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지금 여기 우리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코로나19 상황은 우리 삶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고 있는데, ‘교육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로 더 깊이 확장되지 않고서는 뉴노멀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이 점을 우리가 간과할 경우 온라인 수업은 한낱 ‘콘텐츠’를 제작해 공급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온라인 시대를 맞아 문화예술교육 패러다임에 대한 고민을 하며 우리가 ‘줌 인’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줌 아웃’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성찰하고 실천하는 일이 필요하다.
미국의 한 통계업체 분석에 따르면, 페이스북 최고 인기 비디오의 길이는 평균 90초, 게임 영상은 24.7분, 엔터테인먼트는 12.9분, 음악은 6.8분의 평균 재생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그리고 전체 유튜브 영상의 평균 길이는 11.7분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 ‘대학내일 20대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십대와 이십대 청년들은 하루 평균 2시간 정도를 유튜브 영상 시청에 할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오프라인 교육 내용을 단순히 온라인 강의 콘텐츠로 전환하는 것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의 십대, 이십대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온라인 교육과 더불어 작은 규모에서 참여자들과 ‘스킨십’을 형성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온택트(On-tact) 방식의 교육과 적절히 접속해야 한다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우리가 코로나19 시국에 확인한 것은 ‘연결되고 싶은 존재’로서의 우리들이었다. 십대 아이들이 그리워했던 것은 ‘학교’라기보다는 ‘커뮤니티’였다. 한 조사에 의하면, 십대 청소년들이 학교에 가고 싶은 이유로 꼽은 1, 2위가 바로 ‘친구’와 ‘급식’이었다고 한다. 온라인 교육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커넥트(connect, 연결)’에 대한 아이들의 열망이 지대하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 점은 6월 어느 하루 화성시 D고등학교에서 진행한 인문학 수업에서 나 역시 직접 실감했다. 십대 청소년들은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학교에 초청된 외부강사인 나와의 만남에서 눈망울을 반짝반짝 빛내며 ‘감히 알려고 하는’ 지적 호기심을 강하게 표출했다. 학습은 혼자 할 수 있지만, 관계는 혼자 맺을 수 없다는 점을 교육 현장에서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온-오프라인 교육이 혼합된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 온라인 선행학습 이후 오프라인에서 토론을 벌이는 방식의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이 부상하는 것은 온-오프라인의 장점을 살리는 문화예술교육을 고민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적극 참조해야 마땅하다.
현장과 ‘같이’ 고민하는 공공의 역할
그런 점에서 코로나 시대 온라인 교육을 성찰하면서 우리가 줌 인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줌 아웃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토론하고 합의하는 사회적 과정은 중요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신체성’이 거세된 비대면 문화예술교육의 문제는 질 높은 콘텐츠를 제공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최근 공모한 <어디서든 문화예술교육>을 비롯해 서울문화재단이 진행한 <#모두의 예술놀이> 같은 프로그램 공모에서도 온라인 콘텐츠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참가자와 ‘밀당’(=상호작용)이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한 현장 예술교육자들의 고민은 아직은 희박하다는 점이다. <#모두의 예술놀이> 공모사업을 진행한 강득주 서울문화재단 서서울예술교육센터 매니저가 다음과 같이 말한 대목은 문화예술교육 진영의 고민을 대변한다. “선정 프로그램 중 기술이 접목되는 미디어아트와 같은 프로그램은 3~4건 정도이다. 그 외에는 기존 프로그램을 온라인 콘텐츠로 변환한 방식이다. (중략) 선정자(팀)의 사업수행에 보조적인 지원으로 역량 강화 교육을 하고자 수요조사를 했다. 콘텐츠에 집중하고 영상제작은 협업을 통해 진행하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 대부분 영상기획과 편집 교육을 원한 것이 좀 의외였다.(강득주·손경환·신윤선·정원철, 「좌담: 테크놀로지 시대, 문화예술교육의 방향」)
다시 말해 코로나19 시대 현장의 예술가 또는 예술교육자들은 영상기술에 대한 수요를 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술교육자들이 영상기술 전문가가 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런데도 영상기획과 편집 교육을 대부분 원한 데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으리라.
나는 현장 예술교육자들의 이러한 불안 심리는 문체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그리고 경남문화예술진흥원 같은 광역/기초 문화재단들이 온라인 교육의 시대에 할 일이 무엇인지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콘텐츠 제작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교육 ‘생태계 구축’ 차원에서 공공기관들이 현장의 예술가 또는 예술교육자들과 고민을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을 ‘지도’하겠다는 저급한 발상에서 벗어나 현장과 ‘같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기술결정론에 빠지지도 않고, 인간중심적 관심의 기술론도 아니며, 휴머니즘 이후를 지향하는 감수성으로서의 ‘포스트휴먼’을 적극 고민하며, 기술적인 해법보다는 사회적·문화적·제도적 해법들을 모색해야 한다. 공공의 역할과 민간의 역할이 재조정될 필요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예를 들어 공공은 스튜디오를 비롯해 플랫폼 구축과 공유 서비스 제공 같은 역할을 통해 민간이 자율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며, 디지털 문화예술(교육)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온라인 교육 시대를 맞아 저작권 문제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도화 또한 당연히 수반되어야 한다.
결국, 공공과 민간은 코로나19 시대에 ‘왜 문화예술(교육)은 존재하는가?’에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문체부-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그동안의 정책과 사업을 전반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학교 문화예술교육은 교안 제작 위주의 학습 중심으로 진행한 것은 아니었는가, 사회 문화예술교육은 과연 참여자들의 자기 주도적 예술활동을 일상에서 발견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했는가 하는 차원에서 자기 점검이 전반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성찰과 점검 과정에서 “무지에 대한 수치보다 배웠다는 기쁨을 더 크게 하는 것(”김성우·엄기호,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따비, 2020.) 이 배움의 방법론에서 핵심이라는 점을 확인하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코로나19 시대의 온라인 교육은 우리 사회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형성하고 강화하는 데 기여해야 마땅하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다.”(괴테)라는 말은 우리의 슬로건이 될 것이리라. 공공과 민간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또는 예술교육자들의 즐거운 분투가 필요한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