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다문화언어교환모임-코리너즈

문화교류는 친구를 만나듯 편안해야죠 나이·성별·국적 달라도 대화는 늘 수평적으로 흘러 좋아요

제3기 경남문화기자단 윤종승

다름 속에서 공통의 정서를 나누는 모임

과거 유목민들은 손님을 극진히 대접했다. 몽골인들은 손님이 게르를 찾아오면 귀하디귀한 양고기를 대접하고 최고의 예우를 다했다. 유목민은 자신이 언제든지 이방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척박한 초원에서 항상 거처를 옮겨 다녀야 하는 환경은 ‘상부상조’라는 최소한의 생존방식을 일깨어줬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이방인이다. 자신이 언제든지 이방인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은 타인에 대한 포용의 정서적 기반이 된다. 이방인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야기하며, 다름 속에서 공유할 수 있는 무엇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는 ‘만인을 향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무자비함 속에서도 인류가 평화를 지향하기 위해 합심했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창원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이방인’들이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다름을 이야기하고 그 안에서 공통의 정서를 나누는 다문화 언어교환모임 코리너즈를 찾아갔다.

코리너즈 정기모임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대화하고 있다.

코리너즈의 만남은 수평으로 흐른다.

취재를 가던 날 상남동 거리는 불타는 금요일의 흥분이 파도처럼 남실댔다. ‘불금’의 기대감에 약간은 상기한 인파를 헤치고 코리너즈 정기모임이 열리는 카페에 들어섰다. 코리너즈는 창원과 마산을 중심으로 언어교환을 매개로 한 다양한 문화와 국적의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와 경험을 나누는 다문화 언어교환 모임이다. 코리너즈는 영어와 외국어 실력의 유창함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다양한 문화와 국적의 사람들이 배움과 가르침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아이디어와 영감을 줄 수 있는 모임을 지향한다.

카페 문을 열자 피부색도 나이대도 달라 보이는 삼사십 명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손에 맥주병을 들고 서서 한담을 즐기고 있었다. 어떤 무리는 세상 무거운 이야기라도 나누는 것 마냥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양한 모습의 장면 속에서도 하나의 공통점은 있었다. 코리너즈 모임에는 위계가 보이지 않았다. 나이와 성별, 문화와 국적도 다를 그들 사이의 대화는 수평으로 흘렀다. 하지만 그 장면에는 이질감이나 위화감이 없었다.

코리너즈 정기모임 참가자들이 자유로운 주제로 교류하고 있다.

코리너즈 정기모임 참가자들이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언어를 매개로 문화를 나누다.

코리너즈 황성환 모임장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우선 코리너즈 황성환 모임장에게 다가가 모임의 기획 배경을 물었다. “제가 영어를 공부했는데 우연히 창원에 언어교환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참석하였어요. 이런 모임이 마산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코리너즈는 마산에서 시작했죠. 하지만 코리너즈는 언어교환만 주목적으로 하는 모임은 아니에요. 언어교환이라는 명칭은 가지고 있지만 그보다는 창원과 마산지역에 거주하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문화를 공유하는 모임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황성환 모임장은 코리너즈가 단순한 언어스터디 모임으로 비추어지는 것을 경계했다. 언어교환을 매개로 한 것은 맞지만 방점은 문화교류에 있었다.

황성환 모임장에 따르면 모임에 참가하는 외국인은 유학생, 어학강사, 연구원 등 다양한 직업을 망라한다. 한국인 참가자도 2,30대가 다수이긴 하지만 10대부터 4,50대까지 폭넓다. 불과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이렇게 다양한 배경의 참가자들이 모임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야말로 코리너즈가 갖는 저력이다. 2개월 동안 꾸준히 모임에 참여했다는 경남대학교 중국유학생 왕요검(王耀儉, 23) 씨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음식도 맞지 않고 언어도 어색하여 조금은 힘들었는데 모임을 접하고 나서부터 한국사람들과 네트워크가 생기고 활동반경이 넓어져 적응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친구를 만나듯 편안한 모임

이처럼 코리너즈 모임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는 데에 있다. 낯선 사람들이 코리너즈를 통해 만나고 유대를 다진다. 모임 참가자 팀 윤(Tim Yun, 30대 초반) 씨는 일반적인 언어교환모임이 마치 토익 공부하는 영어수업 느낌이라면 코리너즈는 진짜 친구들을 만나는 것 같은 자연스러움을 준다고 했다. 그는 모임으로 만난 이들이 함께 여행을 가거나 크리스마스파티를 함께 준비하기도 한다며 흡족함을 표현했다.

‘친구를 만나는 듯한 편안함’은 코리너즈 모임을 지배하는 전체적인 분위기다. 이러한 편안함은 참가자들 사이의 ‘느슨한 연대’를 형성하게 한다. 편안하고 가벼운 모임을 바탕으로 한 참가자들의 ‘느슨한 연대’는 프라이버시를 보존하면서도 개인의 고립을 방지한다. 그리고 이질적이기 때문에 활기차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힘이 된다.

박소영(26) 씨는 모임의 단골이다. 박소영 씨도 코리너즈만이 갖는 장점으로 가족같은 분위기를 꼽았다. 서울의 비슷한 모임은 매번 새로운 사람들이 너무 많은 반면, 코리너즈는 고정멤버들이 열과 성의를 다해 모임을 발전시키려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고 했다. 또 강연회를 개최하거나 외국의 신기한 음식을 맛보게 하는 등의 다양한 미션을 준비해서 참가자들이 주기적으로 올 수 있게끔 고정멤버들이 힘을 쓰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부족한 창원청년문화자원

코리너즈 모임에는 창원청년들이 많다. 그들에게 청년으로서 창원 살이가 어떤지 약간은 모호한 질문을 해보았다. 팀 윤 씨는 마산이 참 좋다고 했다. 서울은 너무 복잡하고 사람도 많지만 마산은 부산과 가까우면서도 조용하게 지내고 싶은 본인에게는 딱 맞는다고 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부산에서 복지시설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창원과 마산에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도 그런 그룹이 부족하다고 했다. 박소영 씨도 창원은 너무 기회가 없는 것 같아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구직활동을 할 때에도 그렇고 하다못해 문화생활을 하고 싶어도 극장이 부족하며, 코리너즈와 같은 모임도 찾아보기 어렵다며 아쉬움을 내보였다.

모임을 통해 문화를 이해하다.

코리너즈에는 별도의 운영진이 없다. 모임장의 호칭은 있지만 공식적인 직책은 아니다.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의견을 교환하고 모임을 주도한다. 박지연(25) 씨는 코리너즈 설립 초창기부터 열성적으로 참여하였다. 박지연 씨는 영어를 워낙 좋아해 평소에도 미국 영화와 드라마를 즐겨 보았고 미국에 거주한 경험도 있다고 했다. 그런 그조차 모임에서 이질적인 문화권의 친구를 사귀면서 문화차이를 실감했다. “한번은 외국인 친구가 저희 집에 놀러왔어요. 그런데 그 친구 양말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어머니가 보신 것이에요. 그래서 어머니가 그 친구에게 양말 한 켤레를 주었지요. 그런데 외국인 친구가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 친구에게 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느냐 했더니, 미국에서 양말 선물은 하녀처럼 하대하는 사람에게나 하는 것이라 기분이 상했다고 말하더군요.”

코리너즈의 지향점

코리너즈 모임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지연 씨는 코리너즈 정기모임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기대하고 있다. “재작년 겨울에 저희 집에서 외국인과 한국인 친구들을 스물 몇 명을 초대해 파티를 열었었어요. 함께 식사도 하고 팝송과 캐럴도 부르고 게임도 했지요. 이렇게 정기적인 모임도 좋지만 시즌마다 다른 야외활동을 더 많이 하는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박지연 씨의 바람대로 창립 2년을 지난 코리너즈는 더 큰 보폭을 내딛고자 한다.

황성환 모임장은 코리너즈가 지역사회의 인재풀과 소통창구의 역할을 하길 바란다. “코리너즈가 인재네트워크가 되었으면 합니다. 가령 회사에서 인력을 구할 때 우리 코리너즈에서 적합한 인재를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해요. 또 하나는 우리나라는 나이에 따라 계급 아닌 계급이 나누어지잖아요. 코리너즈는 외국인과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다보니 그런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코리너즈가 여러 세대를 조화롭게 아우를 수 있는 모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40이 되고 50이 되어도 20대 친구들과 언어로 소통하고 문화를 나누는 모임으로 발전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