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영화여, 다시 한 번… 변화의 바람 부는 서부·동부마을
'서리단길'이 핫플로 뜨고 있는 곳
경남문화기자단 김지은
조선시대 영남 최대 역참마을…광복 후 물금 중심지 역할
지금은 고령의 700여 주민만 남은 조그만 변두리 마을
서부마을 안내판_물금역 철로 옆 서부마을회관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경남 양산시 물금읍 서부마을과 동부마을. 물금역을 끼고 있는 이곳은 북으로 오봉산, 서쪽과 남쪽으로 낙동강이 흐르면서 현재 약 700여 주민이 사는 조그만 마을이다. 대부분 70대 이상의 홀로 사는 노인들이 쓰러져가는 오래된 집에서 고향을 지키며 노후를 보내는 변방의 마을이자, 신도시 개발로 매년 눈부시게 성장하는 인구 12만의 물금읍 가운데 가장 낙후된 곳 중 하나다.
그렇기에 이곳이 광복 이후 물금읍사무소, 물금지서, 황산시장 등 물금을 움직이는 주요 기관이 전부 모인 물금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듣는다면 대부분 깜짝 놀랄 것이다. 인근에 물금역과 물금읍 행정복지센터가 있지만 이 두 마을은 누가 봐도 조그만 변두리 마을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 중기 영남 최대 역참인 ‘황산역(黃山驛)’이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 것이다. ‘황산(黃山)’은 물금의 옛 지명이다. 오봉산 일대에서 가야 시대 철광석을 캐면서 항상 누렇고 벌건 녹물이 흘러내린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낙동강과 영남대로, 해로와 육로가 만나는 이곳은 신라 시대부터 물자 수송의 요충지였다. 특히 조선시대 교통의 핵심지 역할을 했던 황산역은 한때 16개 역을 관할하며 9천여 역리와 노비, 46마리의 말이 배치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거대한 역참마을을 형성했다. 하지만 융성했던 과거의 영화는 오간 데 없고 지금은 초라한 마을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곳에도 최근 신도시 개발의 여파가 미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인근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주변 상가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서부·동부마을 주위에도 어느샌가 신축 상가들이 모여들고 있다. 특히 물금 최대 장터로 신라 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알려진 황산장이 서던 자리는 지난해 말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이곳은 1980년대 들어 상설시장인 물금시장으로 바뀌면서 2층 건물을 지었지만, 시공업체가 부도가 나면서 공사가 중단돼 결국 준공검사도 받지 못한 채 흉물로 방치돼 왔던 곳이다.
황산역, 황산잔도 등 양산대표 문화유산 간직한 곳
양산시, 황산역 복원계획 발표…신도시 개발 영향 이어져
황산역 터로 추정되는 곳
이와 함께 최근 눈에 띄는 움직임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그것도 민과 관에서 동시에 말이다. 먼저 양산시는 오는 2027년까지 8년간 물금읍 서부마을과 인근 지역 부지 5만㎡에 황산역을 복원하고 유물박물관을 건립하는 내용의 황산역·황산잔도 복원계획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지난 3월 밝혔다. 황산역은 물금읍 화산4길 18, 일대로 추정된다. 황산잔도는 황산역을 오가는 영남대로 옛길인 낙동강 가의 험한 벼랑길 중 양산 구간을 말한다.
전체 예산은 500~600억 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내년에 세부 사업계획 수립과 공유재산심의, 투자심사 등 행정절차를 진행해 2023년 토지를 매입하고 2024년부터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는 지난 4월 1차 추경에서 기본진단용역비 2천만 원을 확보해 기본계획 수립 및 타당성 조사를 위한 예비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황산역과 황산잔도는 양산시립박물관에서도 2017년 기획특별전 ‘황산역(黃山驛)’을 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할 만큼 양산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특히 역참 문화는 전국적으로 아직 문화관광 개발사례가 거의 없다시피 해, 양산시가 개발에 선제적으로 나선다면 전국 역참 문화의 중심지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
젊은 창업가들이 만든 ‘서리단길’, SNS에서 주목
4060들의 추억을 소환하는 서리단길 초원다방 |
서리단길 빠리의 작업실_성인 취미미술 양산화실 |
서리단길 견과류카페 순수알곡 |
서리단길 서쪽 끝에 자리잡은 물금기찻길 식당 |
동네 골목길에서도 소소한 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 창업자를 중심으로 화산길 주변 낡은 집을 개조해 식당을 차리고 카페를 세우고 사진관을 만들었다. 오랜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복고풍 가게와 곳곳에 포인트를 준 현대식 디자인이 결합한 이곳은 어느샌가 ‘서리단길’이라 불리며 젊은 사람들이 인증샷을 남기러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시작된 ‘~리단길’ 열풍은 이제는 한풀 꺾이면서 다소 식상해진 감이 있지만 자생적으로 이곳 서부·동부마을에 서리단길이란 이름이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원도심 개발, 황산역 복원, 그 속에서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과거와 현재가 천천히 교차하는 서리단길. 이 모든 곳을 품은 서부마을과 동부마을이 과거의 영화를 재현해나갈지, 아니면 무언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다.
서리단길 옛날 통닭집 간판과 신상 도배집 간판이 믹스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