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다랭이마을 달빛을 걷다
경남문화기자단 김조숙
고요한 밤의 소리를 듣고 싶은 이들은 남해군 다랭이마을로 가라. 밤의 소리만이 아니라 달빛이 내리는 길을 산책하고 싶다면, ‘달빛걷기’를 신청하라. ‘달빛걷기’가 무엇일까? ‘달빛걷기’는 달이 뜨는 밤에 사랑하는 이들과 등롱을 들고 다랭이마을 해안 길을 산책하는 행사이다. 이 길은, 남해 바랫길 1코스인 지겟길의 마지막 구간이기도 하다. 이 행사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후원하는 ‘문화우물사업’에 속한다. 남해군 가천 다랭이마을은 올해로 3년 연속 ‘달빛걷기’로 ‘문화우물사업’에 선정되었다. 어떤 행사이기에 3년이나 연달아 선정되었을까? 올해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매 회 참가 인원수를 30명으로 한정했으나 신청 대기자 수가 항상 100명이 넘는다. ‘달빛걷기’의 무엇이 이토록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일까?
<2020달빛걷기> 첫 행사는 지난 7월 25일 토요일에 열렸다. 제 2차는 8월 1일에 3차는 8월 15일에 그리고 4차 행사는 9월 5일, 올해 마지막 ‘달빛걷기’는 10월 3일 토요일에 열린다. 기자는 8월 1일 ‘달빛걷기’에 참가했다. 행사 시작 시간은 저녁 7시이다. 7시가 가까워 오자 ‘다랭이마을 두레방’으로 속속 신청자들이 도착했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희망자들도 줄을 섰다. 다랭이마을 사무장은 고민 끝에 27명을 더 선발했다. 그래서 최종 확정 인원은 57명이었다. ‘달빛걷기’에 참가하고 싶어 먼 도시에서 남해까지 온 여행자들을 차마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 내린 결정이다.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들과 젊은 연인들, 연세 지긋한 분들까지 한껏 기대에 부푼 얼굴이었다. 코로나19 대응 손 소독과 발열체크를 마친 참가자들은 다랭이마을 사무장의 안내에 귀를 기울였다. 행사의 취지와 내용을 소개한 뒤 사무장과 두 명의 스텝들은 한 팀에 한 개씩 ‘소원 풍등’을 나누어 주었다. ‘달빛걷기’의 최고 정점은 소원을 적은 풍등을 날리는 순간이다. 참가자들은, 두레방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풍등에 소원을 적었다. 어떤 팀은 두 글자만 쓰기도 하고 어떤 팀은 풍등 전체에 빼곡하게 소원을 써내려갔다.(이 풍등은 한지로 만든 자연친화 제품이다. 공중에서 다 타고 난 뒤 내려온 찌꺼기는 3개월이면 자연 분해된다.)
다랭이마을 두레방에서 나온 참가자들은 선봉에 선 사무장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행렬의 중간과 끝엔 스텝들이 자리해 안전을 돌본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다랭이마을 산책로로 수십 개의 등불이 걷고 달빛은 머뭇머뭇 마중을 나오고 있었다. 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마을이 다랭이마을이다. 다랭이마을은 도시민에게 남해 농촌의 참모습을 선물하고 싶어 ‘달빛걷기’를 진행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사무장의 안내에 따라 다랭이마을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까지 갔다가 전설이 서린 암수바위 앞에서 잠시 쉬었다. 구수한 입담으로 듣는 사무장의 마을 이야기와 함께 멋진 시낭송 시간을 가졌다. 시를 낭송한 참가자는 아마도 평생 다랭이마을을 잊지 못하리라.
감미롭고 따스한 정서에 물든 참가자들은 이제 ‘소원 풍등’을 날릴 정자까지 걸었다. 가로등이 없어도 환했다. 태양광 등롱 하나씩을 손에 들고 서로 등불이 되어 해안 길을 밝혀 주었다.
태양광 랜턴을 들고 달빛걷기 중
파도소리가 철썩철썩 들리는 정자에 드디어 당도했다. 그곳에서 사무장은, 계단식 논인 다랭이 논을 맨 손으로 일구어낸 마을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다랭이마을의 석축이 무려 38km에 달한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참가자들에게 주문했다. 눈을 가만히 감고 밤의 소리를 들어보자고. 조용해진 정자에 파도소리와 풀벌레소리가 가득 찼다. 이제 ‘소원 풍등’을 밤하늘 높이 날릴 시간이었다. 정해진 순서대로 차례차례 풍등 심지에 불을 붙이고 풍등이 부풀어 오르길 기다렸다. 운영진이 땀을 흘리며 분주한 시간, 참가자들의 얼굴은 새로운 소망으로 발갛게 피어올랐다.
풍등은 절벽 위 저 먼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날아오르는 풍등을 올려다보는 어린이도 어른도 똑같이 순진무구한 표정이었다. “아, 너무 아름답다!” “달빛걷기에 오길 정말 잘했다!” “우리 소원이 꼭 이루어질 거야!” 여기저기서 감탄어린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눈물을 얼른 닦는 참가자도 있었다. 과연 ‘소원 풍등 날리기’는 ‘달빛걷기’의 정점임에 분명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그러한 특별한 순간을 만난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달빛걷기’ 주최측의 섬세한 배려와 행사준비가 돋보이는 시간이었다.
올해 ‘달빛걷기’는 두 차례 행사를 남겨놓고 있다. ‘달빛걷기’에 신청하고 싶은 이들은, 다랭이마을 홈페이지를 얼른 열어 볼 일이다. 9월 5일 4회차 공개 모집은, 8월 30일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홈페이지 내에서 진행한다. 화면을 열어 놓고 기다리다 재빠르게 신청 글을 올려야만 선정될 수 있다. 그 외 궁금한 점이 있다면 ‘달빛걷기’를 총괄하고 있는 다랭이마을 사무장께 직접 문의할 수 있다(전화번호는, 010-4590-4642). 다랭이마을엔 30개의 민박집이 있으니 ‘달빛걷기’를 하고 마을에서 편안하게 묵으면 즐거움이 더욱 커질 것이다. 또한 다랭이마을엔 맛집으로 소문난 향토음식점도 많이 있어, 건강하고 맛있는 남해여행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