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알려드리는 소식지 웹진 Vol. 35

지역 음악인의 보물 창고 - 마산 해거름 LP바

경남문화기자단 윤인철

 8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7대 도시에 속했던 마산. 마산 창동은 경남의 명동으로 비유될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다. 하지만, 한일합섬과 한국철강이 문을 닫으며 창동 일대의 상권은 침체위기에 빠졌다. 2012년, 도시재생사업이 이뤄지면서 골목의 빈 점포를 예술인들에게 무상임대했다. 그 이후, 창동 예술촌의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 이처럼 창동은 부침의 역사를 겪으며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 창동에서도 특별히 오래된 골목길, ‘250년 골목길’에는 창동의 부침을 함께 겪어온 LP카페가 있다. 마산 LP카페의 효시라 불리는 이곳은 1979년 칵테일 하우스 해거름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3호점을 내고 이곳에서 양산한 바텐더들이 마산, 창원 각 지역으로 흩어졌을 만큼 번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창동의 침체와 함께 현재는 1호점 한 곳만 남아서 40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거름 간판 및 외관 사진


 이처럼 해거름의 역사는 오래됐다. 오죽했으면 창동을 대표하는 이선관 시인이 고모령에 대한 시를 읊으면서 ‘해거름’을 언급했을까. 또한, 현대에 이르러서는 멀티예술 디카시(디지털사진과 함께 지어진 시)에도 등장할 만큼 그 역사성이 현재까지 이어진다.


 “창동 네거리에서 남성동 파출소 쪽으로/조금만 내려가면/반세기도 훨씬 지난 어느 해인가/자본금 오원으로 시작했다는/오행당 약국/(...)/오스마 아줌마가 경영하는 양품점을 지나/해거름 앞에 멈추어지는 발걸음/(...)/고모령 고개가 아니 고모령 주점 - ‘이선관 시인 고모령 중 일부’ - ”

 

 “해 질 무렵/창동 ‘해거름’ 불이 켜지면/그리운 이 하나둘/추억의 계단을 오르고 - ‘디카시 ‘SUN SET’ 전문‘ -”


해거름 메뉴판 사진


 해거름은 2대째 사장이 이어오면서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해거름의 ‘지킴이’를 자처하는 고굉무 2대 사장은 군대 갈 1985년 무렵 친구가 아르바이트하던 이곳을 처음 찾았다. 그때의 인연으로 해거름을 종종 찾던 그는 2008년 갑자기 큰 사고로 주인이 가게를 운영할 수 없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의류업을 하던 고굉무 사장은 음악 전공자도 아니고 칵테일을 만들어 본 적도 없었지만, 해거름의 추억을 지키기 위해 가게를 맡았다.


해거름 내부 사진


 20평 남짓한 해거름에 들어서면, 5개 테이블과 바와 마주한 15개의 의자가 놓여있다. 내부 인테리어는 1대 사장인 정의교씨가 문을 열었던 그때 그대로다. 테이블, 의자 하나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해거름은 사장 혼자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 드나드는 모든 이의 손때가 묻어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거름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는 1981년 손님이 그려준 것으로, 칵테일 메뉴 이름과 술 이름 등이 그려져 있다. 또한, 해거름에서 틀리는 LP 중에도 손님들이 기부한 것이 많다.


 자리에 앉으면 LP 카페답게 LP 특유의 지직거리는 소리가 손님을 먼저 반긴다. 물론 신청곡도 적을 수 있다. 하얀 종이 위에 신청곡을 써내면 가능한 곡은 LP로 없다면 MP로라도 틀어준다. 사장님이 특별히 바쁘지 않은 날에는 음악 설명도 덧붙여준다. 한국 대중가요에서 유재하의 의미, 김광석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의 비하인드 스토리, 퀸과 프레디 머큐리의 이야기 등 레퍼토리도 다양하다. 실제로 고굉무 사장은 이러한 음악 야화를 모아 <명곡의 탄생>이라는 책까지 출판했다.


해거름 칵테일 사진


 주문을 마치고 내부를 둘러보면 특별한 포스터들도 보인다. ‘청춘극장’, ‘너의 역사’ 등 지역 극단이 무대에 올리는 연극 포스터다. 또한, 지역 행사와 관련된 포스터들도 보인다. 이는 지역에서 오래 자리 잡아 온 가게인 만큼 지역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사장님 마음의 발로다. 특히, 2012년 극단 마산이 기획한 연극 ‘청춘극장’의 포스터는 해거름을 배경으로 했기에 각자에게 더 의미가 깊다.


해거름 내부 사진2

 바쁘게 변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변하지 않음은 도태됐다는 말과 같다. 우리는 도태되지 않기 위해 유행을 따라 변한다. 하지만 어느새 유행은 다시 우리를 앞지르고 현대 사회인들은 변화의 쳇바퀴에 빠진다. 하지만 해거름은 그 궤도에서 벗어나 있는 듯하다. 인테리어도 음악도 그리고 주인장의 마음도 사회와 유행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에 현대 사회인들에게 해거름은 위로와 휴식의 공간이 된다. 굳이 자신을 바꾸지 않아도 유행에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때문에 해거름의 60년 이후를 응원한다. 해거름이 더 오래 지역에 남아 지역과 지역민들에게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