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문화우물사업 - 시로 소통하는 창녕 유채마을 사람들
경남문화기자단 백수정
매년 4월이면 창녕 남지의 낙동강변은 유채꽃으로 노오랗게 물든다.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노란 풍경을 만나러 봄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꽃이 없는 나머지 계절의 강변은 제법 외롭고 쓸쓸하다. 여기 그 노오란 감성을 사계절 시로 이어가는 주민들이 있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2021년 문화우물 1차 년차 사업에 선정된 창녕사회혁신가네트워크이다. 문화우물사업은 주민주도의 문화공동체 회복과 지역문화자원 발굴을 위한 사업이다. 옛날 마을마다 있던 공동의 우물은 사라졌지만 문화라는 이름으로 마을 사람들의 문화적 목마름을 채워주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창녕사회혁신가네트워크의 ‘시로 소통하는 유채마을’은 시낭송아카데미를 열어 코로나19로 지친 주민들과 시낭송을 통해 삶의 여유를 찾고, 유채축제 등 지역의 축제와 연계하여 지역특화 문화활동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창녕은 낙동강 강바람, 모래바람이 세고, 경상도 말씨도 조금 센 편이에요. 게다가 문화도 도시에 비해 낙후되어 있죠. 시는 읽는 사람의 마음, 듣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시로 주민들과 소통하고 지역의 문화를 만들고 싶었어요.”_박해진, 창녕사회혁신가네트워크 대표
지난 6월 시낭송아카데미 참가자를 모집해 20여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2개월에 걸쳐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 시낭송을 공부하고, 연습했고, 지난 8월 6일 남지읍행정복지센터에서 교육생들의 시낭송발표회가 열렸다.
2층 대회의실에 들어서자 곱게 단장한 교육생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시어가 다 외워지지 않는지 시를 적은 종이를 손에 들고 계속 읽고 있었다. 발표회는 수강생들이 직접 고른 시의 낭송, 강사들의 초대낭송, 축하무대로 채워졌다.
정호승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영숙의 ‘차 한잔 하시겠어요’, 김춘수의 ‘꽃’, 이기철의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함석현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 등 주옥 같은 시들이 창녕 주민들의 낭독으로 이어졌다. 교육생들은 하나 같이 긴장하고 떨리는 모습이었지만 당당하게 시를 읊어 내려갔다. 때로는 시의 감정에 빠져 먼 곳을 바라보거나, 눈을 지그시 감기도 했다. 고단한 삶, 반복되는 일상에 감춰진 주민들의 감성이 작은 무대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렇다. 우리 모두에겐 작은 무대가 필요하다.
창녕지역의 초등학생들의 귀여운 무대는 사람들의 흐뭇한 미소를 불러일으켰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4년까지 7명의 친구들이 나태주 시인의 풀꽃1, 풀꽃2, 풀꽃3을 동작으로 표현하며 씩씩하게 낭송했다. 나태주 시인 특유의 담백한 시어가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과 잘 어울렸다. 이어지는 감미로운 클래식 기타(전미경, 김현애) 선율의 축하무대는 시낭송에 음악적 감성을 더해주었다.
“중간에 약간 틀린 부분이 있어 약간 아쉬웠는데, 나름 잘한 것 같아 뿌듯해요.”_배국환, 남지초4
이 날은 발표회와 함께 창녕유채힐링시낭송회 창단식도 함께 진행되었다. 앞으로 회원들은 창녕의 마을을 직접 찾아가 주민들에게 시로 힐링의 시간을 전하는 ‘찾아가는 시낭송’과 함께 시낭송 대회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발표회 내내 시를 낭송하는 주민들의 표정이 평온해 보였다. 시가 참가자들의 마음에 뭔가를 한 것 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이숙경(65)씨는 이기철 시인의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를 읊었다. 그녀는 시를 낭송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정화되고,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시와 함께 사람들과 공감하며 사랑하는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시와 함께 사람들과 공감하며 사랑하는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 _이숙경(65), 시낭송아카데미 참가자
문학평론가이자 작가인 고미숙은 <나는 누구인가>에서 몸은 존재와 우주가 교차하는 지점이며, 우리가 내는 목소리는 몸 안도 밖도 아닌 곳에 존재한다고 했다. 목소리는 자신 혼자 만의 것이 아닌 타자와의 소통과 관계 속에 존재한다. 책에서 보고,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로 들었던 시들이 창녕의 주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나올 때 그것은 듣는 사람에게 또 다른 시가 되어있었다. 시구 하나 하나에 주민들의 삶이 묻어나고, 관계가 묻어나고, 때론 창녕이 묻어났다. 이제는 봄이 아니어도 창녕의 낙동강변을 지날 때마다 유채의 노오란 감성이 주민들의 목소리로 들려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