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알려드리는 소식지 웹진 Vol. 35

경남 융복합예술의 별잡이 <열두 개의 생>

경남문화기자단 김은아

지역문화콘텐츠와 기술의 만남, 뉴아트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은 ‘뉴아트창작공연지원사업’ 공모를 통해 매년 2~3개 융복합 창작 공연팀을 선정, 공연제작 비용과 문화기술 컨설팅 등을 지원하고, 공연유통 및 사업화 방안을 모색해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격변하는 환경에서 창의적 예술과 혁신의 기술을 결합한 융복합예술의 영역을 개척하여 경남의 새로운 문화(New Art)를 선도하고자 하는 취지다. 


그중 우수작품 집중지원 유형으로 선정돼 3년 연속 지원을 받은 청음예술단이 7월 23일 김해 콘텐츠기업지원센터 시연장에서 작품 <열두 생 : 열두 개의 생> 발표회를 가졌다. 통영12공방 장인의 삶을 전통연희와 융복합기술로 표현한 작품으로서 2019년 첫 공연 이후 3년간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전통연희 창작단체인 놀플러스와 융복합 콘텐츠 기업인 비움아츠가 협업형태로 참여했다. 고정된 전시공간이나 외벽에서의 미디어아트는 흔히 접해왔지만 춤과 노래, 대사가 있는 종합예술공연, 그것도 전통연희공연에 첨단기술이 과연 어떻게 접목될지 공연 전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다.


공연장 작품소개 LED전광판
다양한 소품과 기계장치들로 꾸며진 공연장 내부


<열두 개의 생> 통영 12공방을 알리는 별잡이가 되다

어둠 속에 조명이 켜지고 보부상이 무대에 등장해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보부상은 조선시대 전국 팔도를 돌며 물건도 팔고 이야기도 들려주며 사람과 문화를 이어주던 오늘날의 커뮤니케이터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보부상이 통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다시 돌아왔다. 그의 배에 실려 있는 부채와 갓, 자개장, 대발은 통영공방에서 몇 백년간 이어 온 전통공예품이다. 그는 왜 통영공방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게 되었을까.


조민경 청음예술단 대표는 염장 조대용 장인을 만나 대나무발을 처음 접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대청에 걸어두어 햇빛을 가리거나 외부를 차단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던 발은 뛰어난 기능성 외에도 은은한 분위기 속에 대나무 특유의 운치와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우리 선조들의 멋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조 대표는 발이 가지는 사색의 의미가 바쁜 현대인들에게 휴식으로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대발이 가지는 휴식의 의미와 문양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전통예술공연과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결합하면 어떨까? 즉흥적인 상상에서 출발해 수많은 구상을 거쳐 협업단체들과 힘을 모아 2018년 <휴>라는 작품을 준비하게 되었고, 2019년에 조대용 장인을 포함한 통영 열두 장인의 삶으로 주제를 확장하면서 오늘의 <열두 개의 생>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조민경 대표는 대발을 시작으로 통영 장인들의 삶과 작품들을 접하면서 장인들이 하나 둘 별로 사라지고 소중한 우리 전통문화의 맥이 점차 끊어지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래서 통영 12공방 문화를 널리 알리고 그 가치를 미래로 이어가고자 이 작품을 기획했다. 그는 장인들의 삶을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통해 컴컴한 밤하늘을 밝히는 아름다운 별로 표현했다. 처음 무대에 등장한 보부상은 통영 열두공방의 전통을 별처럼 빛나는 가치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를 밤하늘의 별로 인도하는 별잡이기도 하다. 별잡이의 인도로 통영 전통문화의 정수가 담긴 공예작품들이 하나씩 무대에 올라 연희자들의 노래와 춤으로 표현되고, 그 위로 프로젝트를 통해 각양각색의 레이저가 쏟아져 작품의 가치를 빛으로 되새긴다. 


공연장면


기술과 만나 창의적으로 확장되는 전통예술 

이번 공연의 핵심은 지역문화콘텐츠와 첨단기술의 융합에 있다. 공연에 특수효과처럼 기술이 일부 포함되는 것이 아닌, 기술 자체가 공연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가 되는 것이다. <열두 개의 생>은 장인의 작품마다 주제를 가지면서 각 무대마다 다른 연희와 기술을 보여주는 다채로운 구성을 통해 융합예술의 매력을 극대화했다. 연희자들은 무대의 주제에 따라 신명나게 북을 치다가도 처연한 소리꾼이 되기도 하고, 매혹적인 여인의 춤사위를 날리다가, 범으로 변신해 강렬하게 무대를 장악했다. 무대가 끝날 때마다 각 작품을 상징하는 ‘큐브’가 LED를 통해 자체 발광하는 것이 특징이다. 연희자들은 별이 된 장인들에게 편지를 띄우듯 큐브를 고이 안아 밤하늘로 정성스레 올려보내며 무대를 마친다. 


한국인의 정기를 상징하는 범의 모습으로 강렬하게 무대를 사로잡았다.


발광큐브에 장인의 삶과 작품의 정수를 담아냈다.


발광큐브와 함께 대부분의 무대에서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 기술이 사용되었다. 사방에 설치된 프로젝트를 통해 난반사 레이저들이 쏟아지며 발의 정교한 문양과 화려한 빛의 무대를 만들어냈다. 프로젝션 맵핑은 대상물의 표면에 빛으로 이루어진 영상을 투사하여 현실에 존재하는 대상이 다른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기술이다.


프로젝션 맵핑 기술로 무대바닥에 귀갑문 문양을 구현해 장면을 극대화했다.


또한 맵핑은 이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때로는 의미심장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풍성하게 채우고, 때로는 화려한 시각적 효과를 통해 시선을 모으며 극적 재미를 더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무대 앞에 드리워진 평범한 대나무발에 나전칠기가 완벽한 모습으로 구현되자 그 정교함과 우아함에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처럼 전통연희와 만난 기술은 적재적소 자연스레 녹아들며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어갔다. 


맵핑을 통해 대나무발에 구현된 아름다운 나전칠기


“우리 공연은 사람들 간 소통과 이해가 만들어낸 결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전통연희와 융합기술이 만나 어우러지는 상상이야말로 한국형 미디어아트의 해답일 것이라 생각했던 조민경 대표는 첨단기술을 공연예술에 녹여내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전통단체 입장에서는 기술적 언어를 이해해야 하고, 기술단체에서는 전통단체들의 예술적 언어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다만 지난 4년 동안 끊임없이 소통하며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서로가 가진 예술적 역량과 자산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각각의 장점을 이끌어 내는 방향을 찾을 수 있었기에 지난 2018년 첫 작업 때보다 나날이 더 발전하며 역량을 쌓을 수 있었다. 1년, 2년 시간이 지날수록 융복합기술이 다듬어지고 세 단체의 합이 맞아가며 장인들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에서 기술 중심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을 이루고 서로 이해하며 깊어지는 관계가 이번 공연의 성취를 이뤄냈다고 말했다. 공연 내내 느껴지던 정갈하면서 단단한 ‘합’의 느낌이 그런 과정에서 나온 것이리라. 


앞으로 청음예술단은 경남은 물론 타지역 공연을 통해 통영의 열두 공방을 소개하고, 경남에서 완성한 융복합 공연의 진가를 선보일 계획이다. 문화콘텐츠로서의 <열두 생>을 브랜드화하고 국가 및 지자체 지원은 물론 기업과 협력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여 경쟁력을 키움으로써 융합예술 생태계를 새롭게 구축해나가고자 한다. 


융합예술, 앞으로 새로운 시도와 다양한 연계가 필요

이날 공연을 관람한 창원대학교 문화테크노학과 남상훈 교수는 “제한된 예산으로 전통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기술 위주로 구성해 전통표현을 소홀히 할 수 있는 우를 범하지 않고 절제된 기술 활용을 통하여 성공적인 융합공연을 선보였다”며 공연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아울러 융합예술은 현대적으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에 발전에 따라 계속해서 발전할 것으로 전망하며 앞으로“새로운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시도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과 다양한 장비를 활용해야 하는 특성을 고려한 융복합 전용공연장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한“예술단체의 노력만으로는 융합공연 생태계를 확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관련 기관의 지원뿐만 아니라, 기업과 예술을 연결시킬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며 융합예술이 자생하기 위한 연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의 뉴아트를 기대하며

전통예술이 현대에도 건재하며 널리 향유될 수 있는 것은 예술이 시대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가 유발한 언택트 사회를 거치며 가속화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예술은 융합기술과 만나 현재에도, 앞으로도 한계 없이 확장해 나갈 것이다. 경남의 문화를 알리고 새로운 길을 밝혀줄 별잡이, 다음의 뉴아트가 기대되는 이유다. 


새 물결을 일으킬 뉴아트